매일신문

[9988! 빛나는 실버 S] 80세 만학도 김경자 씨

"학생이기에 공부에만 충실…나이에 신경쓸 여유 없었다"

김경자 씨는 최근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게 되면 일본인과 직접 소통하며 화해하고 싶다고 한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김경자 씨는 최근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게 되면 일본인과 직접 소통하며 화해하고 싶다고 한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결혼 후 63세 때 대학 진학

10여년 걸쳐 영문학 박사 학위

일본의 역사 왜곡 바로잡으려

최근엔 일어 공부에도 푹 빠져

하루에 풍선 바람 넣기 100회

폐활량 늘어나고 얼굴도 생기

"공부하고 싶은 노인들이여! 당당하게 도전하라!" 김경자(80) 씨는 더 많은 동년배 친구들이 학업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건강한 정신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배우며 진화한다. 만학도를 꿈꾸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 어르신이 있다면 그녀의 경험을 들어보고 함께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당당하게 도전하면 눈치 볼 일이 없다

김경자 씨는 최근 공부에 탄력이 붙어 암기력이 더욱 좋아졌다. 영어는 기본기부터 착실히 다져왔기 때문에 원서를 읽거나 영어 라디오를 듣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동안의 노력이 증명하듯 김 씨의 책들은 뜻풀이를 적은 포스트잇으로 빽빽하다. 환갑이 넘어 대학에 입학한 김 씨는 10여 년에 걸쳐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80세가 된 지금도 계속 공부 중이다. 그녀가 공부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김 씨는 1938년 하양 향교의 전교(典敎·향교를 관리하는 책임자)의 딸로 태어났다. 교육자 집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여성이지만 천자문에서 동문선서, 소학까지 공부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국민학교(소학교)시절 김 씨의 집으로 들이닥친 국군이 사랑채를 숙소로 사용했다. 서울대 출신 학도병이 아궁이에서 소학을 외우는 김 씨에게 "서울에서는 여자들도 대학을 간다"며 대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그때부터 김 씨의 목표는 대학교 입학이 됐다.

집안은 형편이 괜찮았지만 전쟁을 겪으며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9남매 중 맏이였지만 남동생 진학이 우선이라 여긴 아버지는 김 씨의 중학교 진학을 반대했다. 김 씨는 아버지 몰래 대구여중에 원서를 냈다. 우수한 입학 성적으로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냈다. 1957년엔 경북여고까지 학업을 마쳤지만 집안 반대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20년이 지나도록 그 일이 못내 아쉬웠다.

김 씨가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십수 년이 흐른 뒤였다. 자식 교육을 직접 하겠다고 생각한 김 씨는 자신이 있던 영어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큰딸이 사 놓은 영어 테이프를 혼자 들으며 독학했다. 영어 공부가 너무 즐거워 귀에 염증이 생길 정도로 반복하며 문장을 통째로 외웠다. 김 씨의 노력 덕분(?)인지 자녀들은 미국과 브라질 등지에서 자리를 잡아 생활 중이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면 언제 단맛을 보겠어요?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려고 63살이 되던 해 대학에 입학했죠."

◆행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行不無得)

2000년 김경자 씨는 밀레니엄의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다. 63세의 김 씨가 갓 스무 살의 학생들과 수업을 듣고 MT에 참가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변의 우려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가장 큰 지원군은 가족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인 척할 필요도 위축될 필요도 없지만 스승님께는 숙일 줄 알고 학생으로서의 본분인 공부에만 집중하세요." 장녀는 어머니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김 씨는 첫 수업시간에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 어린 동기생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절대 지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영어 원서(原書)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도 뜻 모를 단어가 계속 나왔다. 김 씨가 당시에 공부하던 책들에는 뜻을 적어둔 포스트잇으로 책장이 빽빽하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김 씨가 되새긴 말은 '하기 싫은 일이 생길 때야말로 바로 그 일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김 씨는 "처음 원서를 읽을 때와 박사 논문을 준비할 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 그만두고 싶었지만 하기 힘든 것일수록 꼭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매달렸다"고 말했다. 박사 논문을 쓸 당시에는 가족이 걱정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힘이 들었다. 이번에는 김 씨를 유일한 제자로 둔 담당 교수가 그녀를 독려했다. 김 씨는 2011년 대구가톨릭대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씨는 공부에 집중하면서 남들이 염려했던 어려움을 극복했다. 나이가 많아서 젊은 사람과 어울리기 어렵다거나 자신보다 어린 교수를 어떻게 대할지는 고민할 새가 없었다.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에만 충실했기에 스스로도 항상 당당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일본어 공부를 하는 이유

김 씨는 최근 일본어 공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느닷없이 왜 일본어를 배우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신이 일본과 화해하고자 일본어를 배운다고 대답한다. 김 씨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 허리에 칼을 차고 군홧발로 집 안을 뒤지던 일본 순사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김 씨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일본을 더 많이 알고 그들과 화해하려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김 씨는 대학 시절에도 일본과 관련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유학 온 일본인 학생에게 밥 한 끼 해주려고 다가갔지만 그 학생은 김 씨를 멀리했다. 일본 유학생이 김 씨를 멀리한 이유를 알고서는 당황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학생은 한국으로 오기 전 부모로부터 "50살 넘은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나쁜 감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듣고 왔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자신이 일본에 대해 막연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도 일본 학생이 잘못된 정보로 한국 노인을 피하는 일도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 생각했다. 김 씨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되면 일본인에게 왜곡된 역사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하고 양국 국민들 간에 오해 없이 소통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젊음의 비결까지 전수

여든 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김 씨의 얼굴은 탱탱하고 생기가 있다. 시술을 받느냐고 물어봤지만 대답은 NO! 김 씨가 스스로 터득한 운동으로 젊고 건강한 피부를 갖게 됐다. 김 씨는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50번씩 풍선에 바람 넣기를 반복하면 건강한 폐와 활력 있는 얼굴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김 씨는 "방송에서 노인들 폐 운동(섬유화를 막기 위한)을 소개하는 걸 봤다"며 "스스로 풍선에 바람을 넣을 때 볼을 크게 만드는 규칙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반복했더니 폐뿐만 아니라 얼굴에 생기가 돌더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나이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만학도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의 응원 한마디면 분명히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이룰 거라고 했다. "노인들이 뒤늦게 공부하면 체력이나 두뇌 회전이 마음먹은 대로 쉽지 않지만 탄력만 붙으면 무섭게 학습 속도가 붙습니다. 노인이니까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어요.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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