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 노세 '늙어도' 노세~!"
대구 어르신들의 핫플레이스가 있다. 젊은 사람이 모르는 '시크릿가든'(Secret Garden)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쇼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또래끼리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본다. 노인의 90%가 TV를 보며 여가시간을 보낸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는 이곳에서는 무색할 뿐이다. 즐길 거리와 먹거리 정보가 제대로 전달된다면 노인은 집에만 있지 않는다. 대구 노인이 즐겨 찾는 경상감영길이 이를 입증한다.
중앙로역 사이 보리밥집은 반찬이 10가지나
향촌동 구두골목에선 저렴하게 수제화 구입
55세 넘으면 2000원에 입장하는 실버영화관
향수 가득한 옛 영화 보면서 문화생활 즐겨
◆천원짜리 옷이 있다고?
현재는 동성로가 대구를 대표하는 번화가로 이름나 있지만 1990년대까지 경상감영길 동아백화점 주변은 혼수골목~대구 대표 먹거리~금은방을 아우르는 대구의 최고 중심가였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개통 이후 상권이 동성로나 시내 외곽으로 분산됐지만 이곳의 상인들은 아직까지 예전의 명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시니어 스트리트 일대를 찾는 손님들도 그 당시를 추억하는 실버 세대가 대부분이다.
동아아울렛(옛 동아백화점)과 중앙로역 사이는 시니어 패션 스트리트이다. 한복집부터 양장점, 구두 가게 등 다양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인기가 많은 곳은 구제 옷가게. 일본 구제 옷을 판매하는 상점에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가벼운 셔츠 종류는 2천원, 점퍼나 원피스는 4천~5천원에 판매된다. 언젠가부터 인터넷에 가게가 소개되면서 젊은 손님들도 늘었다. 가벼운 액세서리나 여름 면 셔츠는 천원에 살 수 있다.
향촌동 구두 골목에서는 기성품보다 저렴한 값에 수제화를 살 수 있다.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단순히 발에 꼭 맞는 신발을 구매한다기보다 나만의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추억한다. 가게를 찾은 한 손님은 "예전에는 잘나가는 사람만 수제화를 신었다"며 "가게에 전시된 상품을 곧바로 사서 신는 것보다 스스로를 대접한다는 기분에 수제화 가게를 찾았다"고 했다. 상인들은 백화점 전시상품으로 팔리는 수제화를 향촌동에서는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
◆2천원짜리 2인용 국수부터 무제한 리필 국밥까지
2004년 4월 오픈한 '옛날국수'는 13년 동안 음식가격이 그대로다. 어르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대부분의 음식점이 3천~4천원대 음식을 팔고 있다. 그중에서도 2천원짜리 국수를 '두 분이서 나눠 드세요'라는 팻말이 유독 눈에 띈다. 그뿐만 아니라 북성로식 석쇠 돼지갈비를 3천원, 소주나 막걸리는 2천500원에 판매돼 어르신들이 약주에 고기 안주를 곁들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소화가 잘 되는 보리밥도 인기메뉴다. 경상감영공원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사이에는 보리밥집 10여 곳이 밀집해 있다. 보리밥에 된장찌개와 기본 반찬이 3천500원대. 식당에 따라 기본 찬이 10가지나 되는가 하면 생선구이까지 내놓는 가게도 있으니 개인 취향에 따라 찾아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메뉴는 제각각이지만 노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은 저렴한 가격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건강한 음식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시니어 스트리트의 45년 터줏대감 풍차과자점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빵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권영오(76) 사장은 "노인들은 소화능력이 떨어져 몸에 나쁜 음식을 먹으면 바로 좋지 않은 반응이 온다"며 "상권이 죽어도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노인 손님들의 수요 덕분"이라고 했다. 경상감영길에서 이름난 식당들은 싼 가격보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에 더 자부심을 내세웠다.
◆실버영화관엔 시니어와 함께해야 저렴해요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는 찻집은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가격이 반값 이상 저렴하다. 커피나 칡차, 산수유 차 등 10여 가지를 2천원에 마실 수 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박모(70) 씨는 집 근처에도 병원이 있지만 감영공원까지 나온다. 박 씨는 "감영공원 근처 병원들이 노인을 상대하는 데가 많아 척하면 척이다. 의료진이 노인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아픈 곳까지 꼭 짚어 고쳐준다"고 말했다.
2014년 개관한 130석 규모의 실버영화관도 항상 시니어 영화팬들로 가득하다. 하루에 4차례 일주일에 두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실버영화관 요금은 55세 이상 성인이 2천원이고 20세부터 54세까지는 7천원, 학생은 5천원이다. 단 55세 이상 성인과 동반 입장하면 입장료는 2천원이다. 상영되는 영화는 '지상 최대의 작전'(1962년 작), '레 미제라블'(1958년 작) 등 클래식 장르가 대부분이다. 자리 배정은 선착순이기 때문에 미리 와서 표를 구매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많다.
성인 디스코장을 바라보는 음과 양의 시선이 교차한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춤추는 것만큼 노인 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디스코장에서 여가를 보낸다는 송모 씨는 "예전에는 꽃뱀이니 춤바람이니 해서 자식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요즘엔 노인들 스스로 분위기를 정화해 그런 문제는 많이 줄었다"며 "내가 즐겁게 살아야 자식도 편할 거라 생각해 춤을 추러 온다"고 했다. 성인 디스코장 입장료는 남녀 상관없이 1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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