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경상도, 특히 대구경북에 어울리는 글귀다. 예부터 경상도를 일컬으며 영남(嶺南)이나 교남(嶠南)이라 했다. 영(嶺)이나 교(嶠)와 같은 산악의 글자를 넣은 까닭은 지리 인문 환경을 반영해서다. 흔히 옛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을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빗대 말한 바탕도 그래서다. 높고 우뚝하고 잘 변치 않는 우직스러운 믿음의 긍정적인 뜻을 새길 수 있다. 완고스러울 만큼 고집스럽고 변화에 제대로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어두움의 색깔도 감출 수 없다.
이런 태생적인 특징을 가진 영남, 교남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이었던 탓에 일제의 엄청난 핍박과 탄압을 받았음은 마땅하다. 오로지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독립 광복이라는 한 생각에 빠져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까지 마다 않고 폭풍 흡입한 탓에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라는 딱지까지 얻었다. 갖은 회유와 압제, 탄압에도 항복은커녕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일제가 오죽했으면 '고등경찰요사'라는 극비 특별 자료까지 만들기까지 했겠는가.
1934년 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가 반골로 무장한 대구경북의 독립투사인 불령선인(不逞鮮人'말 듣지 않는 조선인)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해 죽임도 서슴지 않는 고등경찰 즉 '고등계' 형사를 위한 비밀 자료집이다. 어느 곳에도 없는 자료집까지 만들 만큼 대구경북은 껄끄러운 곳이었다는 방증이다. '요사'에는 대구경북 항일 독립운동가 등 등장 관련 인물만도 2천500명이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일제는 영원한 한반도 식민지배를 위해 도저히 대구경북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었던 탓이다.
일제 강점으로 우리는 남북 분단과 사상적으로 혼란을 겪었다. 후유증은 광복과 함께 곧 나타났다. 좌우의 이념과 사상의 갈등, 대결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전혀 달랐다. 좌우를 넘어 3'1절 공동 개최와 좌우 4개 정당의 합작 공동위원회 구성을 통한 질서유지 활동, 공동 광복절 행사 개최 등을 이어갔다. 해방 공간에서의 좌우 연합은 미(美)군정 실패에 따른 1946년 10월 항쟁으로 끊겼지만 대구경북은 좌우 공조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반골과 저항, 이질적 사상과 이념의 수용 전통은 이어졌고 현대 정치사에서 그 드러남과 잠복은 되풀이됐다. 물론 특정 정치 세력에 기운 적도 없지는 않았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잘못된 조타(操舵)로 화물이 쏠리면 곧 균형을 이루는 '복원력'을 상실해 배가 침몰했듯이 정치적 복원력을 잃은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속되게 비아냥대는 그런 꼴통 보수의 TK와는 딴판의 역사적 배경을 갖춘 곳이다. 정치인 김부겸의 등장 이후 2015년 대구시장 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로 대구는 균형의 정치 복원력을 회복 중이다.
이런 정치적 균형의 복원력 회복 조짐 결과, 최근 정치인들의 대구경북 나들이도 잦다. 혹 치러질지도 모를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대선주자들의 발걸음이 그렇다. 대구경북 출신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의원,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등의 행보 외에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행보 역시 같다. 그는 한때 감옥살이를 한 뒤 충남지사에 거듭 뽑히는 정치 재기의 성공을 디딤돌로 대선까지 넘보게 됐다.
그의 활동이 돋보임은 특히 같은 당 소속 문재인 대선주자와는 다른 경력과 모습 탓이다. 지방 수장으로서 수도권에 눌려 질식 상태인 우리만큼은 아닐지라도 지방의 소외를 겪은데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으려는 행동, 대구경북에 대한 남다른 관심 등으로 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런 호의적 분위기는 김부겸 의원 같은 앞선 이들의 노력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 정치 복원력을 되찾아가는 흐름을 잘 탄 것은 행운이고 결과는 그의 몫이다.
정치 계절을 맞아 정치의 다양성과 균형된 정치 복원력을 회복 중인 대구경북에 애정을 쏟는 뭇 정치인들이 던지는 웃음이 결코 싫지 않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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