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춘추(春秋) 전기차 시대

벌써 입춘(立春)이 지났다. 아직은 코끝이 시리지만 봄의 상쾌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봄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오물거리면 마음 한쪽이 설렘으로 물드는 것 같다. 그러나 슬프게도 요즘은 봄이 반갑지만은 않다. 황사와 미세먼지 탓이다. 신천대로를 달리는 출근길이 청명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뿌옇고 흐린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도심을 내달리는 경유차나 휘발유차들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대신, 시내 곳곳에 내걸린 전기자동차 보급 현수막이 무척 반갑다.

대구시가 올해부터 전기차 보급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친환경 도시를 만들고 대구를 살릴 성장 동력으로 전기차를 선택한 셈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을 적절하게 읽은 것으로 보인다. 도심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노후 디젤 상용차의 대체 차량으로 전기차 수요가 늘 것이라는 점 역시 대구의 앞길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전기차 도입을 위한 대구시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다. 이미 지난달 25일부터 보급 계획을 세우고 구매자에 대한 신청을 받고 있다. '충전 인프라 구축사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내달부터는 대구시 전역에서 반경 5㎞마다 충전이 가능하게 된다. 대구국가산업단지 내에서는 전기차 공장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전기차 선도도시 구축사업이 대선 공약에도 포함될 것이란 소식도 들린다. 이쯤 되면 대구 시민이라면 한 번쯤 전기차가 바꿀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 만하다.

그렇다고 '딱'하고 스위치만 켜면 내일이라도 전기차가 도로를 뒤덮고 관련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생각은 섣부른 판단이다. 성능을 둘러싼 기술적인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력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현재 전기차 보급'육성에 뛰어든 지자체만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다. 춘추(春秋) 전기차 시대인 셈이다. 꼼꼼히 따져보면 경쟁 도시에 비해 지원 대수나 지원금이 후하지 않다. 대구의 경우 올해 보조금이 지급되는 차량은 1천931대로 제주도(7천361대)나 서울(3천483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지원 규모도 2천만원 정도로 울릉도(2천600만원), 청주(2천400만원), 순천(2천200만원) 등에 비해 박한 편이다.

3%대 저리대출 등 금융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불확실하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차량 대출이 불필요한 데다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이 과연 이뤄질지 의문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초보 수준에 불과하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경량소재를 비롯해 전장부품 및 배터리 등이지만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진 업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지역 자동차 업체들은 낮은 인건비에 기반한 2, 3차 부품 업체가 대부분인데 어떻게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해 전기차 부품 업체로 성장시킬지에 대한 산업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제한적인 지역의 1차 부품 업체들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적인 연구기관이나 대학 연구소의 지원을 바탕으로 2, 3차 부품 업체를 참여시키는 방안 등 차선이라도 준비해야 한다.

또 테슬라 같은 글로벌 기업들에 매력적인 테스트베드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대구시 전역이 시범운행 지역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연간 1천~2천 대 수준의 구매 물량은 생산회사 입장에서는 조족지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개월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전기화물차 보급을 위한 특례법안 통과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하나같이 지역경제계와 정치권이 똘똘 뭉쳐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만 해결할 수 있는 난제들이다.

삼성자동차'위천국가산업단지'밀라노 프로젝트'밀양 신공항…. 그동안 수없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구로서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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