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9일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통일신라시대 효성왕(737∼742)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릉(假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주시 의뢰로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하는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성림문화재연구원은 경주시 구황동 낭산 일원 폐왕릉지로 추정되는 고분지 유적을 발굴조사했다. 이 유적은 금제여래좌상(국보 제79호)과 금제여래입상(국보 제80호)이 발견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서 남쪽으로 약 135m 지점 논이다. 일대는 오래전부터 홍수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신라왕릉과 관련된 석재유물(면석, 탱석 등)이 지상에 노출돼 있었다. 학계에서 신문왕릉, 성덕왕비인 소덕왕후, 효성왕비인 혜명부인, 민애왕릉 등의 폐왕릉지로 비정되거나, 의상의 탑돌이와 관련해 황복사 목탑지로 추정되는 중요 유적지이다.
경주시는 유적 훼손을 막고 폐왕릉지 복원'정비를 위해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신라 왕릉 조영에 쓰일 탱석, 면석, 지대석, 갑석 등 다량의 석재가 확인됐다. 석재 주변으로 8~9세기가 중심 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도로(너비 16~17m) 등과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 귀면와, 습부정정(習部井井), 정원사(鄭元寺) 명 명문기와 등 유물 300여 점이 나왔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한 왕릉의 직경은 약 22m로 전경덕왕릉(765년)과 비슷한 규모이다.
조사 결과 출토된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인 점, 후대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돼 사용되었던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으로 판단할 때 왕을 위해 사전에 능침 조영을 준비하던 중 축조공사를 중단하고 왕릉을 설치하지 않았던 가릉 석물로 추정된다.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 관청이나 특수한 건물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림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도로 유적은 신라 왕경의 다른 도로보다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잘 만들어졌다"며 "왕경의 계획도로였거나 왕릉의 석재를 운반하기 위해 가설한 도로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효성왕은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이다. 기록에 따르면 5년간 재위하다 병사한 그는 무덤에 묻히지 않고 화장됐다. 이 무덤도 시신이 매장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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