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길에서 다름을 만나다

30대 초 다른 나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은 몽환적이고 고풍스러웠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에 나올 법한 멋진 풍경이나 문화유산이 아니었다. 길 가다 스친 한 현지인의 시선은 지금까지도 당혹스러움으로 기억된다. 조용히 길 가던 나에게 정조준한 차디찬 레이저 광선. 그 사람의 그 순간 기분만은 아닌 듯했다. 이방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뺨에 닿은 뜨거운 불길처럼 강렬했다.

한국에서 내가 그들을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지 떠오른다.

시골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제법 눈에 띈다. 그들 대부분은 어리거나 젊은 신부가 되겠다고 왔다. 길에서 그들과 부딪히면 미소를 날리는 것은 고사하고 나도 모르게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동생들을 위하고 집안 사정을 감안하여 자신을 희생하던 수십 년 전 우리네 맏딸의 선택과 닮았을까. 미안하고 안쓰럽다 싶은데 이를 내색하는 것은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아 시선을 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의 외면을 어떻게 읽었을까. 내가 받았다고 확신한 인종차별의 차가운 시선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지 않았을까. 회피가 되었든 차가운 시선이 되었든 이방인을 외롭게 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길에서 만난 이웃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눈 맞추고 가볍게 인사하면 될 일인데.

여러 인종이 섞여 일상을 이루는 문화에서는 이방인과 현지인의 경계가 흐릿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시시각각 이방인임을 의식한다. 때론 어색하고 낯설다. 그렇다고 나를 특별히 이해하고 주목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 가볍게 미소를 나누면 족하다. 그것은 이 문화에서 각자의 색깔을 인정하고 개개인을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종, 국적, 종교, 성적 지향, 정치 견해와는 무관하게 상대를 존중한다는 미세한 행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존심을 지키고 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 분명 나를 알 리 없지만, 길에서 마주치면 웃음을 날려주는 사람들. 처음은 난감했지만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보니 따라 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이제 나도 같은 길에 서 있는 사람과 소소한 소통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방인이 되어본 사람은 길에서 만나는 타인이 눈으로 온기를 전할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누구나 이방인이다. 이런 작은 나눔과 소통이 우리나라 광장이나 일상에서도 가능해지면 좋겠다. 다름 때문에 갈등과 오해가 촉발되고 상황이 혼란스러워지더라도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고 다른 질서와 가치를 모색할 수 있으려면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 그 체력은 길에서 만나 교환하는 소박한 눈빛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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