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예천군 풍양면 공처마을이랬다. 예천읍에서 꽤나 멀었다. 지도를 다시 보니 예천읍내에서 남서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상주 사벌이고, 의성 안계였다. 차라리 상주 사벌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했다. 주민들이 행정구역을 상주로 바꿔 달라 했다는 요구도 무리는 아닌 듯했다.
산이 많아 쌀이 귀했던 경북의 대표적 곡창지대를 가까이에 둔 공처마을도 너른 들판 가운데 있다. 가까이에 내성천과 낙동강이 흐르니 하늘이 내린 '쌀의 땅'이다. 예로부터 이곳에선 봄이면 누구네 논을 막론하고 함께 모를 심었다. 농군들은 군인들의 제식훈련 구령처럼 농요를 합창했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예천공처농요' 보유자 양주석(66) 씨는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게다가 아버지(고 양삼억)는 농요의 리더격인 선(先)소리꾼이었다. 하지만 나이나 경륜에 비해 경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지난해 초 보유자가 됐으니 보유자 인정 일시로 치면 막내뻘이다. 경력 50년의 막내다.
"16살 때부터 했어요. 아버지가 선소리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뒷소리를 따라 했지. 그때는 이 노래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40살쯤(1992년) 됐을 때 선소리꾼이 필요했어. 그래서 그때부터 연습하고, 그랬지."
농요는 철저히 아날로그적이다. 땀 흘리며 집단이 부르던 노래였기에, 악보대로 기계적으로 부르는 법도 없다. 일꾼들이 힘들어하면 박자를 빠르게 해 힘을 북돋우고, 쉬엄쉬엄 해도 될 성싶으면 여유를 갖고 소리를 빼낸다. 현대 문명이 발전하고 핵가족화되면서 '예천공처농요'는 보전 대상이 됐다. 1986년 12월(경북도 무형문화재 지정)이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죄다 기계를 들였다. 농촌 인구가 줄어드니 기계를 들인 것이다. 농요 가락이 끊어질 위기가 기술의 진보에서 온 셈이다.
"인구가 줄어드니까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 거지. 예전엔 남자 50~60명이 했는데 지금은 남자로만 인원을 채울 수 없어요. 문화재청에 문의하니까 혼성이 가능하다고 해. 그래서 우리 지역(풍양면)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서 여자들도 같이 불러요. 지금은 절반이 여자라. 또 지금은 모내기나 논일을 하면서 농요 부르는 경우가 드물어요. 현장성이 낮아진 거지. 일을 하면서 같이 부르면 잘 외워지는데 사람들이 그러질 않으니까 노래 배우기를 힘들어해."
예천공처농요 선소리 부분을 불러 달라 했다. 모심기, 논매기, 걸채, 잘개질, 칭칭이 소리까지. 일의 종류에 따라 빠르기가 조금씩 달랐다. 힙합 음악에 섞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가락은 5가지 모두 비슷하게 들렸다. 다만 복부 깊은 곳에서 쭈욱 뽑아 올리는 소리는 5가지 모두의 공통점이었다. 일하면서 부른 노래로는 믿기지 않았다. 노래만 불러도 힘이 다 빠질 것만 같았다.
"타고난 소리가 중요해요. 재능을 알아채고 갈고닦은 거지. 운이 좋았던 거지요. 재능만 믿고 게으름 피워서도 안 되지만 요즘 애들이 말하는 '노오오오력'만으로도 안 돼요. 각자에겐 특유의 재능이 있거든요. 공부머리 아닌 아이를 붙잡아 공부하라고, 다들 공무원 시험 준비하니 공무원이 되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재능이 뭔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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