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공항, 물까지 떠먹여 주자

지난 설 연휴, 서울 강남에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의 이야기 중 가장 뇌리에 꽂힌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요즘 대구공항 이용하는 서울 사람들이 많더라." 귀가 솔깃해져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서울에서 코앞인 인천공항을 놔두고 대구공항까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금세 수긍이 갔다.

친구의 말은 이랬다. 대구공항의 첫 번째 장점은 저비용 항공 노선이 많다는 것. 두 번째는 저비용 항공 출도착 시간대가 대낮으로, 야간에나 저비용 항공이 이'착륙하는 인천보다 편하다는 것. 세 번째는 최근 수서발 고속철인 SRT 덕에 빨라진 접근성이라고 했다. 대구공항에는 일본이나 동남아로 가는 좋은 시간대의 노선들이 인천공항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게다가 저비용 항공이어서 SRT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여행 경비가 줄어들어 대구공항을 이용할 매력이 충분하단다. 덕분에 SRT가 뚫린 후 강남권에 사는 서울 사람들이 대구공항으로 많이 온다고 했다. SRT를 타면 강남에서 인천공항 가는 시간이나 대구공항 가는 시간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2004년 KTX 개통 이후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대구공항이 개항 이래 55년 만인 지난해 최초로 연간 이용객 250만 명을 넘어선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다양한 취항 노선에 저렴한 항공료, 대기 시간 없는 면세품 인수, 빠른 출'입국 수속, 탁월한 공항 접근성 등은 대구공항의 힘이다,

이런 대구공항이 최근 통합이전을 위한 채비를 거의 마쳤다. 이전 후보지만 결정되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에 들어간다. 대구시는 현재의 공항보다 두 배 이상 넓은 평수로 이사를 가 6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는 큰 비행기를 선물 받겠다며 의욕을 앞세우고 있다. 3천500m가량 활주로 길이를 늘이는 방법으로 미주'유럽 장거리 국제노선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대구시의 복안이다.

하지만 공항만 넓어진다고 모든 미래가 황금빛이 될까. 10년 전 일이 떠오른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고 당시 대구는 '첨단의료복합단지 드림'에 휩싸였다. 미래 먹을거리로 떠올랐던 의료산업을 활성화해 대기업 유치는 물론 의료관광으로까지 대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지역의 산'학'연'관'언론 등이 모두 힘을 모았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첨단의료복합단지 부지 내에 의료기업이 북적이고,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이 지역 인재를 채용하는 희망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 첨단의료복합재단만 유치하면 대기업과 제약기업, 의료기기 업체들이 군침을 흘리며 대구로 향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래서 더욱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통합 대구공항이 새 둥지를 틀어 지역민들의 염원인 하늘길을 더 높이, 더 멀리 연다고 해서 모든 것이 생각대로 따라와 줄 것인가. 항공사들이 큰 비행기를 선뜻 새 공항에 선물할까.

예전 서울 국회를 취재할 때 대한항공 임원 몇 명과 저녁식사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자연스레 남부권 신공항 얘기가 화두였는데, 그때 그들의 기준은 명백히 '돈'이었다. "영남권이 아니라 천국에 신공항이 들어서더라도 돈이 된다는 확신이 없으면 꿈쩍도 할 수 없다"는 한 임원의 굳은 말이 떠오른다.

공항을 순조롭게 잘 이전시키고, 활주로 길이를 늘이는 등 그들이 원하는 스케일을 맞추는 것은 기본. 이후가 더 중요하다. 광역철도 및 도로망을 확충해 영'호남권으로 범위를 넓히고, 확장될 김해공항과 차별성에 비중을 둬야 한다. 항공사들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유치도 필요하다. 또 동대구역'서대구역에 공항 등록 수속 원스톱 서비스 준비 등 많은 것을 새로 준비해야 한다.

말을 물가에만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 바야흐로 지방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의 입을 벌려 물까지 떠넣어 줘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