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달을 보며
김상헌
희비가 백번 바뀜에 이 한 몸도 파김치라 悲歡百變一身殘(비환백변일신잔)
세상 일 깜짝 놀라 뼈도 서늘 하려 하네 世事驚心骨欲寒(세사경심골욕한)
요동 산에 휘영청 뜬 대보름달 하나만은 惟有遼山今夜月(유유요산금야월)
그 맑은 빛 옛날 보던 그때 그달 그대롤세 淸光猶似昔年看(청광유사석년간)
* 원제: 너무 길어 생략.
태평성대라? 태평성대가 언제 있었던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태평성대는 없었던 것 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오히려 난세가 아닌 시대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려울 지경이니까.
위의 시를 지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살았던 시대는 바로 그 난세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난세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이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큰 전쟁을 온몸으로 관통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병자호란 때는 주화파(主和派) 최명길과 용호상박으로 격돌하면서 청(淸)에 대한 투쟁의 최선봉에 섰고, 치욕스럽게도 항복을 하게 되자 청나라의 서울 심양으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다 받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려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청음이 심양으로 끌려가며 지었다는 시조다. 조국 산천에 대한 뜨거운 사랑, 떠나기 싫지만 떠나지 않을 수가 없는 현실적 상황,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미래 등 그의 마음속의 만단정화(萬端情話)가 대놓고 쏟아놓은 직설적 언어 속에 가슴 뭉클하게 포착되어 있다. 난세 가운데서도 특별한 난세가 아니면 결코 나올 수가 없는 시다.
1643년 1월, 병으로 잠시 의주로 돌아와 있었던 청음이 다시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지었다는 위의 한시는 그가 지은 시조의 한시 버전이다. 청음의 나이도 어느덧 일흔넷, 희비가 백번이나 널뛰기를 하는 동안 몸도 이제 늙어 파김치가 다 되어버렸다. 게다가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려야 할 사태들이 또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지금도 그는 일흔이 훨씬 넘은 고령으로 다시 적지에 끌려가는 놀라운 사태 앞에 직면해 있다.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 요동 땅에는 정월 대보름의 휘영청 밝은 달이 연례행사처럼 두둥실 뜬다. 청음은 만감이 다 어린 표정으로 그 둥근 달을 우두커니 쳐다본다. 그 옛날 그때 봤던 그 보름달 그대로 환하게 떠 있는 대보름달을!
지금 이 시점도 청음의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난세다. 불통(不通)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고, 대권주자들은 중원의 사슴을 쫓아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선장도 없는 일엽편주에 집채만 한 삼각파도가 사방에서 휘몰아친다. 그렇거나 말거나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 저녁이 되면 둥글고 환한 대보름달이 그야말로 '휘영청' 떠오를 게다. 사백 년 전에 청음이 심양으로 끌려가며 요동 땅에서 우두커니 쳐다봤던 바로 그 보름달과 같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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