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금기·신화, 세상에 떠도는 음식 이야기…『음식패설』

음식패설/김정희 지음/앤길 펴냄

굴은 왜 '사랑의 묘약'이 됐나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를 초청해 오찬을 했다. '식사 정치'는 허기를 채우는 본능적 섭취 행위가 아니다. 당시 오찬도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새 지도부와 상견례를 하면서 국정 운영에 공조를 부탁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해석됐다. 이런 이유에서 테이블에 올랐던 메뉴 하나하나에 관심이 쏠렸는데, 청와대는 캐비어 샐러드, 송로버섯, 샥스핀찜 등을 내놓았다. 일반인은 진미, 별식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나 겨우 접했던 고급 재료를 택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송로버섯의 경우, 1㎏에 수백만원을 호가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폭염에 지친 국민의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음식은 정치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음식에 대한 종합적인 담론이 찾아왔다. '음식패설'은 식탁을 중심으로 펼치는 세상 이야기다. '먹방' '쿡방'의 홍수에 묻혀가는, 화려한 레시피로 차린 밥상에 뺏긴 시선을 다른 각도로 돌린다. 책은 음식을 6가지 주제로 다르게 접근한다. 키워드는 사랑'금기'신화'권력'정치'사회다.

음식스토리텔러로 활동하는 저자는 식품공학박사다. 지은이가 말하는 음식은 한 개인에게 생리적 채움이자, 사회적 관계의 매개체다. 음식은 나눔이고, 긍정적 인간관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음식만큼 세상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6가지 테마 중 첫 번째는 '사랑'이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섹시푸드' '에로틱푸드' '리비도'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온다. '후방주의'(19금 콘텐츠가 있으니 뒤에서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의)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저자는 '힘'을 북돋운다고 알려진 음식과 그에 포함된 영양소가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했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매일 저녁 먹었다는 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 정력제의 최고로 친다.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비타민, 미네랄, 필수아미노산도 풍부해 근육운동과 신체기관 발달, 세포 성장과 재생을 돕는다. 불교 수양에서 금하는 오신채(五辛菜) 중 마늘'부추와 양파, 생강도 막강한 힘을 주는 채소들이다. 같은 효능을 가진 음식은 더 있다. 장어. 새우. 참치, 연어, 석류, 복분자, 토마토, 다크초콜릿 등.

이런 음식은 대체로 금기와 연결된다.

제2장은 '금지된 열매와 음식'이다. 사과가 어떻게 해서 '금단의 열매'로 여겨졌는지, 감자는 왜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불경하고 태만한 음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등을 설명한다. 프랑스가 새콤달콤한 토마토케첩의 중독성을 얼마나 경계했는지는 어린 시절 마른 식빵에 케첩을 발라 먹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끄덕일 이야기다.

제3장은 '신화 속 음식'을 소개한다. 신화 속에도 음식은 넘쳐난다. 단군신화만 봐도 그렇다. 쑥'마늘이 곰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의 전쟁을 촉발시킨 과일은 다름 아닌 사과였다. 질투의 여신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를 두고 미(美)를 다투던 중, 승자를 판단하기로 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가장 아름다운 여자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가면서 벌어진 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복숭아, 올리브, 파슬리, 배, 아몬드는 신화에 어떻게 나타날까.

어떤 음식은 부와 권력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제4장에서는 철갑상어의 알 캐비어. 거위의 간 푸아그라, 독특한 향을 가진 식탁 위 다이아몬드 송로버섯 등 유럽 혹은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진귀한 음식을 논한다. 야만적인 사육 방식이나 잔인한 포획에 대한 비판도 섞였다. 인공재배가 불가능한 송로버섯은 알려진 것만큼 비싸지 않다. 유럽 대형마트나 공항 식품 코너에서 20g에 1만원 정도에 살 수 있으니 여행 기회가 있으면 적당한 가격에 쉽게 맛볼 수 있다. 식당 식탁 구석에 늘 자리 잡은 후추나 건강의 적으로 치부되는 설탕도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세계사의 큰 흐름을 장식하는 음식도 있다. 제5장 '식품과 정치'에서 차(茶)와 커피는 대륙을 양분하는 기호식품으로 등장한다. 영국 보험사 로이드의 뿌리가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됐다는 것,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였던 보스턴 차 사건, 홍콩 할양으로 마무리된 아편전쟁이 차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 등은 음식이 정치에 얼마나 깊숙이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끝없는 시험과 선택지를 앞둔 소비자를 겨냥한다. 원래의 맛을 잃은 채, 복잡한 영양성분 설명, 인공감미료, 마케팅에 현혹된 소비자에 대한 경고와 조언을 담았다.

재료 본연의 맛으로, 정성으로 승부하는 맛집이 얼마나 될까. 사랑'부'권력의 맛을 쏙 뺀 음식이 아쉬운 시대다. 얼기설기한 구성에도 이야기는 흥미롭다. 맛집에서 잡학(雜學)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툭 던진 한마디에 식사 중 대화의 품격이 한 차원 높아질 수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맛있는 식사는 비싸고 좋은 음식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232쪽, 1만3천원.

※용어설명

◆리비도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용어. 좁게는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에너지, 곧 성욕을 뜻하며, 넓은 뜻으로는 삶의 본능에 주어진 모든 심적 에너지의 총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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