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100가지 말/20세기 독일사연구회 지음/송태욱 옮김/아르테 펴냄
'히틀러의 100가지 말'은 히틀러가 옥중에서 구술한 것을 기록한 '나의 투쟁'을 비롯해 그의 연설과 측근들이 적어둔 그의 말을 모은 책이다. 히틀러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행동, 악인의 모습과 한 인간으로서 면모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히틀러의 독일 민족과 유대인에 대한 시각, 종교와 사랑에 대한 견해, 독일의 미래상, 주변국 지도자들에 대한 생각 등을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히틀러는 정치가로서 '프로파간다'(선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독일 민족의 정신까지 지배했다. 그는 '말'이 지닌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대중심리 분석을 중요시했다.
비록 히틀러는 사라지고 없지만, 현재에도 '프로파간다'를 활용해 대중을 세뇌하는 정치가들은 있다. 히틀러 시대 독일인들이 그랬듯 대중은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온갖 정치적인 '사탕발림' 속에서 사실은 선동가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도 많다.
'천국을 지옥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고, 반대로 지옥 같은 생활을 천국이라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히틀러는 프로파간다로 대중을 현혹해 눈앞의 현실을 전혀 다르게 보도록 하는 것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대중은 항상 어리석은 존재였다. 따라서 어리석은 대중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려면 수많은 시간이 허비되는 만큼 명석한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주입하려 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복잡한 '설명' 아닌 단순한 '감정'에 호소
히틀러는 '선전'에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원래 학식이 있는 사람들의 교양을 더욱 높이고 그 통찰력에 호소하는 것. 또 하나는 어떤 일정한 사실, 과정, 필연성 등에 대중의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다.
히틀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후자였다. 선전 내용에 학술적인 요소, 사실 관계를 알자면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것 등은 가능한 한 지우고, 선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머리가 아주 나쁜 축에 드는 사람의 이해력 수준에 맞춰 공략했다.
본격적인 대중 선동에 앞서 히틀러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군중심리학' 독일어판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은 '군중은 의지가 강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경향이 강하고, 되풀이되는 말에 비판 정신이 마비되며 암시를 받기 쉬워진다'고 말한다.
열정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 대중은 판단력을 잃고 따른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연설을 할 때는 항상 열정적으로, 진심을 담아 '사랑을 고백하듯' 말을 쏟아냈다.
히틀러는 대중을 요리하기 위해 연설 내용은 물론, 장소와 시간까지 철저하게 고려했다. 마치 연극배우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무대를 고르듯, 그는 대중을 사로잡을 최적의 시간, 어휘를 고르고 또 골랐다.
◇많은 적을 하나로 좁혀라
히틀러는 대중을 휘어잡기 위해서는 대중의 눈에 적이 단 하나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지도자는 대중의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고, 유일한 표적을 향하게 하는 데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령 여러 종류의 적을 공격할 때도 그 적들이 '하나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믿도록 함으로써 '운동으로 끌어당기는 자석의 힘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대중은 사려가 부족해 본질을 놓치기 쉽다는 인간관이 자리 잡고 있다.
'대중은 사려가 부족하다'는 말을 대중은 듣기 싫어하지만, 대중이 사려가 부족하고, 선동에 쉽게 속는다는 것은 고금의 사실이다. 선전과 선동에 속아 엄청난 국가적 사회적 폐해를 야기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정의로운 일'을 수행한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히틀러는 천부적인 연설력으로 평화, 행복, 이념, 발전이라는 추상적인 말을 사용함으로써 청중에게 허황한 희망을 설파했고, 나치당 지지자들을 늘려 갔다. 1933년 총리로 취임한 히틀러는 불과 3개월 만에 당원을 85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늘렸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
히틀러는 1922년 4월 "우리는 이미 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는 가능한 한 비굴한 태도를 취하고 자기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면서까지 식민지화를 거들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외국인은 유대인을 말한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에게 독일을 이미 빼앗겼고, 그 기회를 제공한 것은 공평과 공정을 주장하는 민주주의 신봉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나치즘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유대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간주했다.
히틀러는 민주주의 외에도 의회주의, 마르크스주의, 볼셰비즘, 자유주의, 평등주의를 비롯해 독일제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제1차 세계대전 등 '모든 반독일적인 것들의 창조자'가 바로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사유재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가 노동해 취득한 것뿐이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유대인을 겨냥한 말이었다. 나치당 강령에는 '불로소득의 철폐, 기생 지주 타파'가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대금업, 이권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려는 의도에서 기인했다. 그는 유대인의 절멸을 원했다.
◇청년 시절엔 미술'오페라에 심취
히틀러는 이탈리아, 일본과 함께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최악의 독재자였지만, 그에게도 장래를 두고 부모와 갈등하고 화가가 되기를 꿈꾸던 소년 시절이 있었고, 바그너와 오페라 음악에 심취했던 청년 시절이 있었다.
히틀러는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어머니는 사랑했다"고 말했다.
소년기에 그는 아버지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히틀러에게 관리가 될 것을 강요했지만 히틀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히틀러가 14세 때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다지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해준 어머니 클라라가 4년 후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아버지 때와는 비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 책은 '말은 인생이고 역사다'는 인식 아래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인물이나, 사상, 사회현상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에서 가려 뽑은 '100가지 말'을 통해 인물과 역사를 보여준다. 총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주제는 선동, 열광, 투쟁, 광기, 애증이다. 227쪽, 1만4천원.
▶20세기 독일사연구회는…
20세기 독일사연구회는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를 연구하는 저널리스트, 연구자, 출판 관계자 그룹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신념 아래 과거의 정치 프로파간다를 연구'분석하는 한편, 현대 정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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