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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트럼프의 윷놀이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이달 말에 잡힌 나의 프랑스 일정을 들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엄마의 해외 일정을 허락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들었다. 사회 선생님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대해 들었다며, 딸은 소수민족인 한인으로서 엄마도 미국 입국 심사에서 거절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범죄 경력도 없는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무사통과일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뭔가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충격적인 정책의 윷가락을 던지며 세계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그의 반이민 명령은 한인 사회에 직격탄을 날렸고, 불법체류 중인 한인들은 불식간에 가족과 직장을 떠나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또 그 적용 범위가 위법 전력이 있는 영주권자로 확대될 수 있다는 말에, 영주권자들도 미루던 시민권 신청을 서두르며, 미국에서 누렸던 복지 혜택과 교통 위반 전력까지 돌아보며 긴장하고 있다. 많은 유학생들과 취업 비자 소지자들도 다른 나라로 선회하는 여정까지 고려하고 있다.

요즘 미국 곳곳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 아니면 도'라는 극단적 정책의 윷놀이를 멈추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도 한국처럼 대통령에게 탄핵이란 엄벌을 내리자고 하고, 성난 민심은 곧 백악관 앞까지 촛불을 들고 모여들 기세이다. 그러나 이런 격랑 속에서도 트럼프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자기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이런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거센 반트럼프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거침없는 혁신 정책에 내심 기뻐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규제 명령 등은 원래 그의 주요 선거 공약이었던 만큼, 지금 그는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라고 본다. 또 트럼프에 대한 호의적인 해설은 한 줄도 없이 그의 직설적 언사에만 확대 해석을 붙인 언론의 편파 보도는 트럼프를 아예 비상식적인 지도자로 몰아세운다고 항의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무분별한 선심을 남발하며 인정스러운 어머니의 역할을 했기에, 트럼프는 이제 고갈된 국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억척스러운 어머니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도 한국과 같이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트럼프를 지지하는 층과 트럼프를 반대하는 층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아 나라를 이끌어야 할 대통령들이 오히려 민심을 양극화시키는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특히 한국은 앞으로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중도가 없는 보수와 진보라는 극단적 선택을 충동질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다. 중도적 통합을 주장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향해 진보든 보수든 단 하나만 선택해서 정체를 밝히라고 다그쳤던 정치인들이 이제는 민심까지 네 편 내 편으로 나눌까 염려스럽다.

당분간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미국에 '모'가 될 만한 윷가락만 계속 던질 것이다. 그리고 이 윷판을 둘러싸고 트럼프의 윷가락이 '모'이기를 바라는 지지층과 그의 윷가락이 '도'라고 비난하는 반지지층이 편을 갈라 싸우게 될 것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트럼프를 보면서, 미국처럼 민심이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한국을 새롭게 할 지도자상을 그려본다. '모'를 위한 강력한 추진력에 앞서 '도'를 염려하는 국민들의 충언에도 허리 굽혀 들어주는 지도자, 자신의 뜻과 맞서는 사람들도 옳고 그름의 흑백논리가 아닌 서로 다름의 가능성 안에서 받아 주는 통 큰 지도자야말로 이 시대가 기다리는 지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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