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권력의 향기는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대통령 되려는 과욕은 몸에 해로워

권력은 부패하기 쉬운 점 명심해야

최순실 게이트 청와대엔 악취 풍겨

'별일도 아닌데 소동'으로 우기려나

'여자의 향기'라는 주제의 영화가 있었다. 이 주제를 이해 못 할 남성은 없다. 이집트에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가 '기자'라는 곳에 들렀더니 향수의 원료를 파는 집이 있었다. 거기의 젊은 주인이 크리스챤 디올을 비롯하여 세계 유명 향수의 원료가 다 이집트의 아름다운 꽃들에서 채취되는 것이라고 내게 일러 주면서,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로 명성이 자자하던 오마 샤리프가 자기 삼촌이라고 자랑하였다. 그 청년도 아마 지금은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님, 누님 그리고 나는 유별나게 냄새를 잘 맡는 코를 타고나서, 향기에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다.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나만 남았는데 나이가 90이 되었어도 그 능력만은 여전하다. 우리 가족이 평양 경창리 30번지에 살던 때 나는 아직 소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미국 선교사들이 사는 '양촌'이 있었다. 한여름 그 양옥들 앞에 넓은 정원이 있어서 장미꽃들이 만발했던 어느 날, 그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만발한 장미꽃들의 은은한 향기-나는 그 향기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향수 이름도 곧잘 기억한다. 샤넬, 조이, 오피움 등 대개의 명품은 다 아는데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향수는 디오리시모이다. 지난번 해외여행 때 동행했던 황무영 회장이 그 향수의 큰 병을 하나 면세점에서 사주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1년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아껴 쓰니까,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을 만큼 아껴 쓰니까!

향수 이야기를 하려고 붓을 든 것은 아닌데 향수 이야기를 너무 오래 하였다. 나는 '권력의 향기'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권력의 향기'가 얼마나 매력적이면 권력의 정상을 노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을까. 정말 놀랍다. 왜들 권력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가?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어려서 가정교육을 잘 못 받아 그런 것 아닐까? "너는 장차 대통령이 돼야 해."- 그런 말만 듣고 자라서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

한 번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진 사람도 이번에 또 나오겠다고 설치는 걸 보고, 그 동네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는가 의심하게 된다. 그 사람 근처에는 대통령 될 만한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과대망상증이라고 한다. 그것은 극도의 '나르시시즘'이기 때문에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엔의 사무총장을 10년이나 한 사람이 은퇴하고 돌아와 한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니 우리는 어리둥절하였다. 그가 이미 자진 사퇴하였으니 거론의 여지가 없지만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을 내가 찾아서 적극 밀어, 조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는 고려 말의 최영 장군처럼 "장부의 위국충절을 세워볼까 하노라" 하면서 돌아왔으면 모를까, 내가 한번 권력의 정상을 차지해 보겠다고 하니 덕이 없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고 느꼈다.

내가 보기에는 대학 교수로 후진 양성에 진력하면 될 사람이 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 때문에 신세를 망치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우선 걸음걸이부터 남자다운 '호보'(虎步)로 바꾸어야지 그렇게 '아장아장' 걸어다녀서는 청와대까지 가기 어렵다.

'권력의 향기'에 취하는 사람들이 다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을 지망하는 숨은 용들도 몇 마리 있다고 들었는데 과분한 욕심은 몸에 해롭다. 누울 자리를 보면서 다리를 뻗어야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할 사실은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는 것이다. 썩은 권력의 악취는 정말 참기 어렵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부터 청와대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 '권력의 향기'는 이제 '권력의 악취'로 돌변한 셈이다. 수십만 수백만 개의 촛불을 밝혀도 그 악취는 왜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일까? 선량한 국민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대로 '별일도 아닌데 일대 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을 벌였다고 우기려는가? '권력의 악취'가 점점 더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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