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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칼럼]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법치국가란 말 그대로 사람보다 미리 정해 놓은 법이 앞서는 나라다.

사람이 아닌 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리스의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욕망의 지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다스리게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욕망 없는 이성의 지배"다. 법치엔 사람의 욕망이나 감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욕망이나 감정이 끼어들지 않으니 법대로만 하면 공정하고, 객관적 지배가 가능해진다.

플라톤 역시 그의 저서 법률(Laws)에서 법치의 유용성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법이 정부의 주인이고 정부가 법의 노예라면 그 상황은 전도유망하고 인간은 신이 국가에 퍼붓는 축복을 만끽할 것이다."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은 것에 다름없다는 찬양이다.

그런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두고 촛불과 태극기 민심이 극단적으로 맞서면서다. 한쪽에선 '조기 탄핵' '탄핵 인용'을 촉구하고, 반대쪽에선 '탄핵 기각'을 외친다.

대한민국 법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필요할 경우 소추 의결은 국회가,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로 국회가 만든 법이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판단할 헌법재판소는 이런 법치의 상징이다. 헌법재판관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탄핵 여부를 심판하면 되고 재판권은 존중돼야 한다.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이, 유력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헌재를 겁박하고 있다. 각자 유리한 판단을 내달라며 헌재를 쥐어흔든다. 민심이 요동쳐도 진정시켜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불난 민심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탄핵 기각이면 혁명"이라 했다. "위대한 촛불 혁명이 끝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 달라"고 촛불 민심을 법 앞에 뒀다. 그는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어 이대로 선거라면 대통령 당선에 가장 유리한 상황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 술 더 뜬다.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국민 뜻과 반하는 결론을 낸다면 승복할 게 아니라 헌재 퇴진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동에 다름 아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들은 탄핵 기각을 헌재에 강요하고 있다. 조원진 의원은 태극기 집회 단상에 올라 "탄핵을 기각하라"고 외쳤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에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치밀하게 심판했고 어느 쪽도 반발하지 못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소추에서 기각까지 64일이 소요됐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2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64일 만에 끝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대통령 탄핵에는 충분한 법리 검토와 헌법재판관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시일을 못 박거나 상황에 떠밀려 서둘러 결론을 맺는다면 사태의 종점이 되어야 할 헌재 심판이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될 것 같아 우려된다. 빌미를 제공할 경우 어느 쪽이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을 다소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법치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헌재 결정은 분열이 아닌 국민 통합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충분하고 완전한 심리가 필요하다. 야권 대통령 후보들이 법치를 흔들면서까지 민심을 자극할 일이 아니다. 헌재 또한 국정 공백 사태가 길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고 해서 여당이 정권을 유지할 것이란 기대는 난망이다. 그러니 야당으로서는 법치를 흔든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서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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