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누렁이 옆에 묻어 달라." "농사의 절반을 책임졌던 소였다. 좋은 것만 먹이는 등 정성이 대단했다."
앞은 2009년 개봉된 영화 '워낭소리'로 잘 알려진 경북 봉화군 상운면 산정마을 최원균 할아버지가 2013년 10월 폐암으로 죽기 전, 생전 기르던 누렁소 무덤 옆에 묻어줄 것을 주문한 유언이다. 뒤는 가족처럼 지내던 소를 구하려고 2015년 2월 불난 축사로 뛰어들었다 목숨을 잃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의 60대 할아버지의 이웃들이 전한 증언이다.
소는 옛 농촌에서 가족이었고, 농가 재산목록 1호였다. 어릴 적, 5일마다의 장날 소시장에서 젖 뗀 송아지를 두고 홀로 온 어미 소의 묵직하고 먼 곳에 눈을 두고 하염없이 울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미 소와 떨어진 송아지를 키울 때, 어미 찾는 송아지의 애절하고 가냘픈 울음 역시 시골에는 흔했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옛사람은 소를 생구(生口)라며 사람처럼 대접했다. 소에 얽힌 숱한 사연 가운데 의(義)로움이 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특히 경북이 그렇다. 어미 잃은 송아지를 길렀던 밀양 박씨가 죽어 장사 지낸 뒤 소도 죽자 주인 무덤 아래 묻은 구미 봉곡동 의우총(義牛塚) 사연과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한 소를 기린 무덤인 의우총과 의우도란 그림이 남아 있는 선산 산동의 설화가 사례다. '워낭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소는 또 느림의 뜻으로 조선 문인의 글감이었다. 권근의 글에 나오는, 호조차 '기우'(騎牛)인 벗 이행의 사연이 그렇다. "나의 벗(이행)이 평해(울진 평해)에 살면서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고서 산수 사이를 놀았다.… 말은 빠르고 소는 느리니 소를 타는 것은 곧 더디고자 함이다.… 소를 놓아 가는 대로 맡기고 생각나는 대로 스스로 술을 부어 마시면… 그 즐거움이 있는 것이니… 소를 타는 즐거움을 그 누가 알리오."
이랬던 소가 먹는 고기로서만 부각되면서 구제역 괴질(怪疾)로 수난이다. 이 괴질로 뭇 소들이 속절없이 땅에 묻혔고 또 그럴 운명의 악순환이다. 되돌아보면 1980년 국민 1인당 2.6㎏이었던 소고기 소비량이 지난해 11.5㎏으로 늘어남에 따른 소 사육 환경 변화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건강한 소를 생산, 괴질을 이길 강한 면역력을 키우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백신 주사에만 기댈 일은 아닌 듯하다. 사람처럼 이제 소도 '복지'를 접목한 '동물 복지' 수준에서 키워 괴질을 견디게 할 때가 됐다는 신호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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