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도시내기'의 옷차림과 '촌사람'의 옷차림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곧 따듯해지겠지) 바깥 날씨도 춥지만 세상 날씨도 춥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따로 마련된 옷장에 간다. 몸에 맞는 두툼한 옷을 골라 입는다. 죄다 도시 사람들이 입다 버리거나 우리에게 보내준 옷이다. 나한테는 50년 넘게 도시에서 넝마주이로 살고 있는 형이 있다. 나는 아홉째 아들로 태어나서 '구병이', 형은 여덟째 아들로 태어나서 '팔병이'. (우리 아버지는 고지식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농사꾼이셨지만 상상력이 없으셨다. 아니면 '효율성'을 앞세우셨을까? 그래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내가 "추워요" 한마디 하면 팔병이 형은 주워 모은 넝마 가운데서 옷이며 이불이며 마구 마구 보내준다. 가끔 공동체를 아끼는 분들 가운데도 옷을 보내는 일이 있다.

나는 도시에 나가는 일이 자주 생긴다. 도시에 나가면 온통 꽃밭이다. 저마다 다르게 차려입은 옷들이 얼을 뺀다. '도시촌놈'이자 '촌도시내기'로 반반씩 살아온 반거충이인 내 눈은 양쪽으로 열려 있다. 먼저 우리 공동체 식구들 옷차림. 봄가을에도 거의 한결같이 여름 옷차림이거나 겨울 옷차림이다. 몸에 편한 대로, 맞는 대로 걸쳐 입는다. 색상이나 디자인은 거기서 거기다. 도시에서도 여름옷 겨울옷은 거의 그러지 않나? 공동체 옷장에는 멋진 봄가을옷도 많이 걸려 있다. 그 가운데는 이름난 '브랜드'가 찍혀 있는 외제 옷도 있다. 알록달록하고 색상도 화사하다. '디자인'도 끝내준다. 그런데도 식구들 아무도 그런 옷을 탐내지 않는다. 천덕꾸러기로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어느 날 없어진다.

내 짐작은 이렇다. 도시내기들은 남의 눈에 돋보이려고 옷을 차려입는다. (거울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봄가을이 오면 도시는 유행하는 여자 옷으로 활짝 피어난다. 그러나 촌에서는 차려입어도 보일 사람이 없다. 보나 마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잘 꾸며 입어도 허술하게 차려입어도 누가 누구인지 뻔히 안다. 그렇다고 갓 움트는 풀이나 벙그러지는 꽃에게 자랑할 수도 없고 잎 지는 나무에게 내보일 일도 없다. (봄에 피는 꽃이나 가을에 물드는 단풍에 견주어보면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명품' 옷이라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그저 따뜻하거나 시원하고, 개울물에 빨래 잘 되는 작업복을 먼저 골라 들 수밖에.

'도시내기'들은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하루아침에 패가망신하기도 하지만), '촌놈'들은 자연에 잘 보여야 한다. 자연은 옷차림이 곱다고 그 사람을 예쁘게 여기지 않는다. 봄여름가을겨울 한 철 한 철 접어들면서 철이 들고, 한 철 한 철 나면서 철이 나는, 철든 사람, 철난 사람, 철 있는 사람을 더 잘 보살핀다. 철없는 사람, 철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잘 차려입어도 자연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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