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지하철 참사, 멈추지 않는 고통]사고 났던 2003년 '위암 초기' 판정받은 80대

장수하신 부모님, 암 없던 12형제 "술·담배도 안 했는데, 유독가스 탓"

10일 오후 중구 대구지하철참사부상자대책위 사무실에서 김호근(81) 씨가 위암 수술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10일 오후 중구 대구지하철참사부상자대책위 사무실에서 김호근(81) 씨가 위암 수술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2003년 2월 18일 오전 무역대리업을 하던 김호근(81) 씨는 부산 세관으로 가려고 도시철도 1호선 안지랑역에서 열차에 탑승했다. 그것이 자신을 14년 넘는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을 선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했을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던 김 씨의 귓속으로 "불이야!"라는 외침이 선명하게 울렸다. 이가 부러졌는지도 모르고 계단을 기어올랐고 눈을 떴을 땐 병원 침상이었다.

오랜 병실 생활이 이어졌다. 호흡이 가쁘고 가끔 신물이 올라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정밀진단 결과 위암 초기라는 진단서를 받아 든 김 씨는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났던 그해 8월이었다.

지하철 사고와 위암 수술을 겪은 그의 삶은 통째로 변했다.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값나가는 보석을 공급하며 제법 돈을 만졌지만, 건강을 잃은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매일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일만 반복할 따름이었다. 길을 걷다 어지러워 주저앉아 119구급차 신세를 지는 것도 익숙해진 그에게 구급대원은 신상정보가 담긴 팔찌를 선물로 줬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말하는 아내가 곁에 있어 그나마 힘을 낸다는 김 씨는 사고 때 마신 유독가스 때문에 위암이 생겼다고 굳게 믿고 있다. 106세까지 살다가 작고한 어머니, 98세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암으로 죽은 이 없는 12형제를 생각하면 암 발생 원인을 도무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씨는 평생 술'담배를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14년 동안 매일 약에 의지해 세월을 보냈습니다. 철저한 관리 덕분에 다른 곳으로 전이는 안 됐으나 그동안 들어간 약값과 병원비, 가족들이 받은 고통을 떠올리면 사고 후 덜컥 받아버린 보상금이 얼마나 적었는지 실감이 납니다. 사고 당시 마신 유독가스가 암의 원인인지 알고 싶지만,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답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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