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당의 주일학교 교사가 초교 3, 4학년 남자아이들에게 물었다. "집안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뭐냐?" 얼핏 '공부해라' '치우고 놀아라'는 잔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과는 정말 의외였다. 정답은 "아빠 오셨다. 인사해라"는 엄마의 말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리 살가운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는 평소엔 일한다는 핑계로 얼굴도 보이지 않다가 가끔 마주칠 때면 훈계조의 말을 던지는 잔소리꾼이나 간섭쟁이일 뿐이다. 공부나 게임에 열중하는데, 아버지가 귀가했다고 방에서 나와 인사를 하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대접을 받고픈 아버지와 그것마저 하기 싫은 어린 아들의 자그마한 갈등은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고대 폼페이 유적의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는 글귀를 들지 않더라도, 부자간의 갈등과 긴장은 어느 시대든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가 급변할 때 아버지와 아들의 긴장 관계는 더욱 심해진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적대한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1862년)과 한승원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1989년)은 시대 배경만 달리할 뿐, 갈등 양상은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르게네프는 귀족 출신의 이상적 자유주의자인 아버지 세대와 평민 출신의 혁명적 민주주의자인 아들 세대의 갈등을, 한승원은 보수적인 기성세대 아버지 박주철과 좌익 성향의 대학생 아들 윤길의 갈등을 그렸다. 이 소설들은 부자의 갈등 관계를 해소하지 않고 끝맺는다. 작가들은 이념'가치관 문제에 관해선 부자간의 화해와 소통은 존재할 수 없다고 봤다.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인류 보편적 문제로 여긴 것이다.
이번 설에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이 시국 문제를 놓고 크게 다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 얼굴 보기 싫다'는 바람에 차례를 지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지만 이런 집안이 한둘 아니다. 요즘처럼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경쟁하듯 열릴 때에는 부자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아들은 끝까지 자신만 옳다고 우길 것인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승자가 있을 수 없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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