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2부] <8>근대건물 부활하는 북성로

80년 된 건물 인테리어 필요 없어요, 세월이 만든 흔적 덕분에…

2015년에 촬영한 리노베이션 전 꽃자리다방 건물
2015년에 촬영한 리노베이션 전 꽃자리다방 건물
현재 꽃자리다방 내부 모습
현재 꽃자리다방 내부 모습
소금창고
소금창고
지난해 9월 소금창고에서 열린 재즈 공연
지난해 9월 소금창고에서 열린 재즈 공연

북성로 근대건물이 부활하고 있다. 근대에 지어졌지만 세월이 흐르며 빈 공간이 됐거나 아예 쓰러져가던 건물들이 원형을 되찾는 것은 물론 새로운 쓸모도 부여받고 있는 것. 1930년대에 지어진 한 적산가옥(일본식 주택)이 2011년 '카페 삼덕상회'로 리노베이션 된 것을 시작으로 북성로 근대건물에 다양한 가게가 속속 들어서며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구 근대건물 절반이 있는 중구에서도 유독 근대건물이 밀집한 북성로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꽃자리다방 부활하다

구상(1919~2004) 시인이 6'25전쟁 때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를 연 '꽃자리다방'이 있었던 빈 건물에 새 꽃자리다방이 지난 2월 초 문을 열었다. 과거 북성로와 향촌동의 유서 깊은 다방 중 녹향은 대구문학관 지하로 자리를 옮겨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백록, 호수, 청포도 등의 다방들은 이름과 터만 남았다. 그래서 꽃자리다방은 원래 자리에 원래 이름으로 더구나 원래 업종으로 복원된 다방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꽃자리다방은 6'25전쟁 시기 대구로 피란 온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장르 구분없이 예술을 뒤섞은 대구 구도심 다방의 부활도 꿈꾼다. 이곳 주인 서민식 단디자인 대표는 "2층 카페와 3층 루프톱(옥상)을 참신한 공연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북성로 동편 입구에 있는 입지를 살려 꽃자리다방을 북성로 여행 안내소로도 삼고 싶다"고 했다. 마침 꽃자리다방에서 불과 100여m 거리에 있는 대구문학관은 현재 구상 시인을 조명하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꽃자리 구상전'(3월 5일까지, 월요일 휴관)을 개최하고 있다. 게다가 대구문학관 및 함께 있는 향촌문화관은 1912년 건립된 근대건물 선남상업은행(이후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보수해 2014년에 들어섰다. 벌써 구상 시인과 근대건물을 매개로 투어 코스 하나가 만들어진 셈이다.

◆문화예술 담는 북성로 근대건물

북성로에서 근대건물 복원으로 먼저 주목받은 곳이 있다. 지난해 9월 개소한 복합문화공간 '소금창고'다. 1907년에 만들어진 목조 건물과 1937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을 하나로 합친 공간인데, 실제로 과거에 소금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이곳은 1'2층 복층 구조를 살린 운치 있는 공연장으로, 높고 넓은 벽면을 활용한 전시 공간으로, 북성로 불고기 및 가락국수를 파는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공간을 복원한 주인 김헌동 화가는 2014년 북성로 '믹스카페' 리노베이션도 주도했다. 믹스카페 역시 1910년대 및 1950년대에 지어진 두 곳 근대건물에 카페, 정원, 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소금창고와 믹스카페 둘 다 근대건물 리노베이션 내지는 대구 도심 재생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김 화가가 생각하는 근대건물의 매력은 무엇일까. "근대건물은 세월이 만든 흔적들이 건물 전체에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주는 게 장점입니다. 그러니 실내장식을 따로 할 필요가 없죠. 또 근대건물이 가진 현대에는 생성되지 않는 근대의 요소들은 우리에게 사고와 감성의 폭도 넓혀줄 수 있습니다. 근대건물로 가득한 북성로는 커다란 근대건축 박물관입니다."

북성로에 있는 근대건물은 적산가옥이 대부분이다. 최근 리노베이션을 진행해 문화예술을 콘텐츠로 삼은 곳으로는, 차정보 미술가가 130년 된 2층 규모 적산가옥을 한옥 스타일로 손 봐 지난해 3월 작업실 겸 카페로 문을 연 '골목(golmok) 카페'와 박현수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930년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을 이육사(1904~1944)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 겸 카페로 꾸며 지난해 5월 문을 연 '264작은문학관'이 대표적이다.

현재 북성로 남쪽 수제화골목의 근대건물 몇 곳도 새 단장 중이다.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치면 일식당, 공방, 카페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성년 경북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도 옛 건물 두 곳을 고쳐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인쇄소, 아트숍, 작업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대구의 골목이 지닌 근대의 이미지를 다양한 디자인 제품으로 선보이는 공간을 꾸려나가겠다. 이곳 골목을 찾는 여행객과 학생들을 위한 인쇄 체험 공간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마침 수제화골목 인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1910년 개업) 인쇄소인 '경북인쇄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쇄'라는 연결고리가 새롭게 발견된다.

◆한일 교류 센터, 대구 여행 아지트, 사회적기업 보금자리

북성로는 사람을 모으는 거점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북성로 일대 근대건물에 수년 전부터 형성된 공간들이 다양한 주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

2년 전인 2015년 2월 8일, 수제화골목에 있는 한 1960년대 근대건물에 공간을 마련한 '대구하루'는 최근 2주년을 맞았다. 이곳은 평소 북카페 및 대구를 찾는 일본 여행자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하고, 수시로 한일 교류 관련 강좌, 문화 행사, 연구 모임을 주최해왔다. 수제화골목이 있는 대안동에 오래전부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 역사적 맥락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대구하루는 지역 젊은이들에게 일본 취업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2월 21일에는 일본 천리대 학생들과 영남대 학생들의 만남도 주선한다. 박승주 대구하루 대표는 "한일 교류를 주제로 대구와 일본을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를 펼치겠다"고 했다.

2013년 북성로 남쪽 대구종로초등학교 인근에서 운영을 시작한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 숙박 제공 외에도 물총 축제, 외국인과 함께하는 글로벌 파티, 트롤리버스로 대구골목투어를 안내하는 청라버스 운행 등 이색적인 관광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이며 전국 및 해외 여행객을 대구로 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더 스타일의 한옥형 게스트하우스 '더 한옥&스파'는 1960년대 한옥 건물을, 레스토랑 '키친1916'은 1950년대 창고를 개보수한 공간이다.

북성로는 사회적 기업가를 꿈꾸는 청년들을 모아 육성하는 대구 사회적 경제 1번지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2011년부터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는 '북성로 허브'가 있다. 현재 북성로 허브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져 이기붕 부통령 박마리아 부부의 옛집으로 또 한때 자유당 대구경북도당사로 쓰인 근대건물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그동안 10여 곳의 사회적기업이 꾸준히 둥지를 튼 공간 역시 북성로 여기저기 임대료가 저렴한 근대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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