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뼈와 살이 싸운다

아버지가 왕이라면 최상위 금수저이고 남부러울 것 없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본인이 왕위를 물려받거나, 왕이 된 형제와의 사이가 무지 끈끈해야 한다. 전제주의 국가에서 왕자들은 비명횡사를 걱정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다. 역사에 기록된 '왕자의 난'이 이를 보여준다.

권력은 냉혹한 것이고 속성상 나눠 가질 수 없다. 이슬람 세계에서 술탄(최고 권력자)은 집권 초기에 자신의 이복형제들을 죽여 씨를 말렸다. 나중에라도 위협이 될만한 싹은 미리 도려냈다. 중국에서는 권력욕에 눈먼 측근들이 황제의 형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도 황제가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적잖았다.

형제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 한정된 식량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형제는 타인의 시작'이라는 서양속담은 그래서 생겼다. 성경에서도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이고, 야곱이 형의 장자권(맏아들의 권리)을 콩죽 한 그릇으로 사는 등 형제가 반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 형제가 철천지원수처럼 싸운다는 뜻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라는 말이 있다. 뼈와 살이 서로 싸운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잔인한 비유인가. 골육상쟁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중국에 전해진다.

위나라 조조가 죽자 장남 조비가 왕위를 계승해 문제(文帝)가 됐다. 문제는 총명하고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동생 조식을 시기하고 두려워했다. 어느 날 문제는 조식을 잡아들인 뒤 "내가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시 한 수를 지어내라. 그렇지 못하면 처형하겠다"라고 명령했다. '형'(兄)과 '제'(弟)라는 글자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도 달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조식은 울먹이면서 시를 읊었다. 저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이다.

"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도 급한가." 형제를 콩과 깍지에 비유해 반인륜적 골육상쟁을 꾸짖은 것이었다. 시를 들으며 신하들 모두 눈물을 흘렸고 문제도 동생을 없애려는 생각을 접었다.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백주에 살해됐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소행이라는 의심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현대 문명사회에서 상상도 못할 야만적인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 막장스러운 권력투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신 더 바짝 차려야 할 사건이 발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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