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현실 외면한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정책

보건복지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은 야간에 소아응급환자 발생 시 대학병원 응급실 쏠림 현상과 진료 대기시간 단축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밤이나 공휴일에 갑자기 아프거나 기존 증상이 나빠지면 아이는 물론 부모에게도 힘든 고통을 안겨주고, 자칫 부모 가슴에 평생 씻기 힘든 낙인이 새겨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일반 소아청소년과의원이 진료하지 않는 공휴일이나 야간의 의료 사각지대에 아이를 진료해 줄 달빛어린이병원을 만들자는 사업의 취지에는 의료인과 국민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은 소아 야간응급의료 개선이라는 문제의 책임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전가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 탓으로 미루고, 의사들을 비하하는 행태를 보면 직업적 회의가 들 지경입니다.

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이 사업에 반대하는 것일까요? 첫째, 의사 혼자서는 진료할 수 없고 2명 이상의 간호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낮 근무자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야간과 주말 늦게까지 근무하는 간호사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임상병리기사, 임상촬영기사 등 다른 보조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인력을 구했다고 해도 정부가 제시하는 금액은 소아환자 20명이 내원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소아 응급환자는 한두 명에 불과합니다. 이 엄청난 괴리를 정부는 해결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정부는 말을 바꿔 응급실을 방문하는 소아 경증환자를 줄이기 위해서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경증 환자를 위해 이러한 제도는 절대 필요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경증 환자를 위해 소중한 세금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반발 무마용처럼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소아응급환자는 급속하게 중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합니다. 감염성 질환이 많아 이를 판별하는 검사장비와 기구도 있어야 합니다. 소규모 병'의원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사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가정이 있습니다.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오전 8시에 출근해 자정까지 주말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근무를 할 순 없습니다. 살인적인 근무를 강요하는 이들에게 이런 요구가 과연 합리적인지 묻고 싶습니다. 결국 개원의에게 달빛어린이병원은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지금도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중에는 오후 9, 10시까지 환자를 보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고 탁상공론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회유하는 정책 책임자들에게 제안합니다.

대구는 5개의 대학병원을 비롯해 중'대형병원들이 모여 있는 의료 인프라가 매우 잘 구축된 지역입니다. 그곳에는 충분한 인력과 여러 가지 진단기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아응급환자의 부모들은 다른 응급환자에 밀려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대형병원 응급실을 꺼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구의 대형병원들이 경북대병원과 계명대 동산병원처럼 소아환자를 위한 야간 창구를 전면적으로 열어서 필요한 예산을 대구시나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비용과 시간의 낭비는 확연히 줄어들 겁니다. 또한 각 구'군보건소와 공공의료기관에 휴일과 야간 소아응급코너를 만드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은 출발 자체가 의료공급자나 정책전문가와 전혀 논의되지 않은 주먹구구식 정책입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과 아픈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 진정 필요한지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