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부 고위 관료가 대구의 한 토론회를 찾았다. 그는 교육부의 향후 대학 재정 지원사업에 대한 방향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설명보다는 '해명'에 공을 들였다. 재정 지원사업과 반값 등록금 정책 등에 대한 대학 관계자들의 불만을 의식한 듯했다. 이 관료는 강단에서 "우려했던 것보다 참석자들의 비판 수위가 높지 않아 다행이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교육부가 시쳇말로 '죽을 맛'이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뭇매를 맞는 형국이다. 각종 정책에 대한 반발과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 여기에다 정유라의 부정 입학과 학사 관리 특혜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를 계기로 낡은 교육시스템을 바꿔보자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급기야 '교육부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 폐지론은 대선주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주요 선진국은 중앙교육부가 교육청을 지원하는 형태인데 한국은 교육부가 지시하고 명령을 내려 교육 자치를 막고 있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국민 위에 군림하며 정권 입맛에 맞는 교육을 강요하는 교육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계도 동참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교육부 폐지 및 축소를 주장하고 있으며 전국의 많은 사립대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국가교육위원회'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각계각층이 참여해 향후 교육 정책과 계획 등을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는 합의제 기구다. 교육위원회를 통해 교육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교육 자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 취지다. 한국 교육에 신물이 난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제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나 실효성 등은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한다. 교육위원회 설치는 사실 새로운 제안이 아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가 국회에서 발표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방향 분석'에 따르면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교육위원회 성격의 '교육개혁추진단'을 대선 공약으로 제안했지만 결국 운영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고 새 정권이 시작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교육위원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최종 공약집에는 빼기도 했다.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정치권의 목소리가 국민의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공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교육부에 대한 불신은 사실 정권을 잡은 세력이 성급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지향하는 데서 기인했다는 해석이 많다. 교육계 한 인사는 "특정 캠프에서 대선을 통해 집권하면 정권인수위원회에서 국정 과제를 만들고 교육부는 5년 동안 이를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합리적인 정책보다는 집권 정당이 어디인지, 누가 집권하는지 등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 쏟아진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구조라면 교육위원회를 설치하더라도 제대로 운영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실효성도 충분히 연구되고 논의되었는지 의문이다. 교육위원회는 금융통화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등처럼 합의제 기구다. 이런 기구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고 정책만 결정할 뿐 예산을 확보할 수 없어 실행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참여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등의 여지도 많다. 이처럼 교육위원회가 '만능'이 아니며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교육위원회는 상당히 매력적인 방안이며 한국 교육의 미래를 위해 가야 할 방향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정치권과 교육계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묻고 싶다. "교육 분야에서 가장 잘하는 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듣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설익은 정책을 내놓아 혼란만 키운 것은 아닌지, 교육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이번만큼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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