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순종길, 이토길?

"지방 소요는 가라앉지 않고 서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통감 이토는 짐의 나라에 성의를 다하고 짐을 보도(도와 이끔)하고 있으며…짐의 이번 길에도 특별히 배행(따름)케 함은 급한 지방 순시를 돕게 하여…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난국의 영제(令濟'구함)를 기하고자 함이다. 여러 대신과 신민 모두가 필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은 1909년 1월 4일 난생처음 대구 등 남쪽 지방을 돌아보는 남순(南巡)에 앞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지방 방문 목적을 알리는 뜻이다. 1월 7일 대구역에 내려 경상감영에서 자고 이튿날부터 부산, 마산에 갔다 12일 대구에 또 들러 달성공원에서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기념식수도 했다.

그런데 대구 일정은 임금보다 차라리 이토 독무대였다. 이토는 거창한 이틀 밤을 보냈다. 왕족, 이완용 총리 등 여러 대신, 이토 '양아들' 박중양 경북도 관찰사, 대구 주둔 일본군 여단장 등 한'일 거물들을 들러리 세우고 열린 7일 밤 환영행사에서는 물론 12일 밤 숙소 앞에서도 수백 명 대구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일장 연설로 자신을 자랑했다.

"폐하의 심중은…나의 보도에 따라 한국의 부강을 도모하려는데 있다…폐하께서는 일마다 본인의 충언을 거두셔서 양국의 친화를 꾀하심은 이번 본인의 보익(도움)에 따라 남방으로 순행(돌아봄)하심에 있어 그 배호(수행)를 본인에게 구하신 것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하겠다…일본은…이웃 나라를 도와 부축해주고…한국 신민의 행복을…열망하는 나라이다…이번의 순행은 주로 이런 취지에 바탕을 둔 것…한국민은…받들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말대로 하는 순종을 받들어 일본 뜻대로 따라오라는 협박이다. 1904년부터 대구에 살며 생생하게 현장을 지켜본 일본인 가와이 아사오의 기록('대구 이야기')을 보면 순종은 조역, 이토가 주역이다. '이토 공이 숙소로 돌아갈 즈음 소학교 생도들을 선두로 관민의 제등(提燈) 행렬이 있었고, 이토 공 만세삼창'도 했다.

지금 중구청에서는 '순종황제 어가 길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올해까지 5년간 70억원을 들인다. '당시 시대 상황과 어가 길에 숨겨진 민족 항일정신을 표현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현'하기 위함이다. 대구 도심인 대구백화점 부근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끝내 반대하면서도 정성을 쏟는 황제길이 자칫 이토를 떠올리는 길이 되지는 않아야 될 텐데 걱정이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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