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김인육의 <사랑의 물리학>

첫사랑이었다 -김인육의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의 전문)

멈춰야 하는 것일까? 사실,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실상 멈춰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대체로 첫사랑은 그렇다. 어쩌면 모든 사랑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첫사랑은 더욱 그렇다. 그냥 그렇게 벌어진 사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고, 노을이 지고, 파도가 밀려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한다면 이미 첫사랑이 아니다. 사정없이 굴러 떨어지는 것이고,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는 그것이 첫사랑이다.

최근 이란 시가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라는 드라마가 안방을 휩쓸면서 따뜻한 PPL의 대명사로 이 말 그대로 떴다. 교사 김인육이 유명 시인으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시가 실렸던 라는 2012년 시집은 이란 이름으로 개정판으로 나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름다운 캐나다의 가을 풍광과 함께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기집애,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기집애'가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순간, 900년이 넘게 느끼지 못하던 사랑이 순식간에 밀려오는 찰나의 시간, 어쩌면 평범한 이 시가 그 풍경과 함께 시청자의 감성을 사정없이 갈겼다. 사랑만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현상도 정말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미디어가 순수 문학의 영역까지 지배하는 상황이 무척 슬프기는 하지만, 그것이 시대의 풍경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던가. 다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그 순간에 이 시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도 망했을 거라고 자위한다. 하루에도 수천 권의 책이 나오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는 책은 드물다. 태어났다 바로 사라지는 수많은 종이 생명들. 상을 받거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거나 원작으로 소개되면 갑자기 판매 부수가 늘어나는 상황. '어쩔 수 없다, 불가피하다'라고 말하고 나면 어딘가 허전하여 잠들지 못하는, 그렇게라도 해서 책이 많이 읽히면 좋지 않나 하는 자기 위안, 그 사이에서 내 생각은 길항한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종이책의 입지는 내 삶의 고향을 잃어버린 듯 허허롭다. '시가 죽었다, 소설이 죽었다, 문학이 죽었다'는 말들이 세상을 떠도는 2017년 현재, '정말 시가 죽었을까? 소설이 죽었을까? 문학이 죽었을까?' 하고 다시 질문을 던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자기 위안의 자존심보다는 대중이 책으로 회귀할 수 있는 2017년 현재의 방법을 찾아가는 거기에 책을 죽이지 않는 현명한 길이 존재하지 않을까? 누가 뭐래도 나의 첫사랑은 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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