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통령 탄핵 3월 초 선고 의지
이번 사태는 처음부터 광장이 주도
민주적 절차 따르고 있는지 회의감
법규를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시대
마침내 대통령 탄핵 사태가 그 끝을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재판 최종 변론기일을 지정하면서 3월 초 선고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헌재의 속결(速決)은 처음부터 예상됐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자신이 퇴임하기 전에 선고할 요량이었는지 심리를 서둘렀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위반 사항 외에도 뇌물죄 같은, 아직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죄명을 탄핵소추안에 넣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탄핵심리가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추안에 있는 여덟 가지 법률위반 사실은 대부분 수사와 재판을 거쳐야 할 문제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그러지 않았다. 국회 측에 소추안을 헌법위반 사항으로 정리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대법원장도 3월 13일 퇴임하는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인선절차를 밟지 않았다. 대통령 측의 대응이 지연전술로 보인 것도 헌재의 속결 태도에 명분을 보탠 셈이 됐다.
특검은 특검대로 대통령을 턱밑까지 압박했다. 처음부터 특검법에 규정된 수사사항은 무시됐다. 오로지 대통령을 옥죌, 그래서 탄핵이라는 낭떠러지로 그녀를 몰 수 있는 뇌물죄 성립에 명운을 걸었다. 노골적인 '삼성특검'이었다. 특검이 구성되기 전만 하더라도 게이트를 수사했던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는 뇌물죄에 회의적이었다. 미르나 K스포츠재단이 법률적으로는 공익법인이었고, 그 돈을 박 대통령이 챙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뇌물죄를 수사한다 해도 면세점 허가와 연관된 롯데와 특별사면의 은전을 입은 SK, CJ 등이 그 대상으로 보였다. 그런데 특검은 달랐다. 시작부터 삼성을 타깃으로 삼아 밀어붙였다.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됐는데도 마지막 수사기간 대부분을 쏟아부어 마침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시켰다.
주말, 서울은 둘로 갈렸다.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 대로에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을 경계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열린 것이다. 저녁 무렵 광화문 광장 쪽엔 마치 축제 같았다. 한쪽에선 사물놀이패 공연이 벌어졌고 시민나팔부대란 이들이 흥겨운 가락을 쏟아냈다. 다른 쪽에선 사드 배치 저지결의대회란 정치집회도 열렸다. 밤이 되자 이들은 촛불을 들고 청와대와 헌법재판소가 있는 쪽으로 행진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조속한 탄핵 결정과 특검 연장이었다. 반대편 서울광장 쪽은 대한문부터 남대문 너머까지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꽉 찼다. 내가 보기엔 반대편 광화문 광장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아마도 내달 초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탄핵 기각과 함께 특검 해체를 외쳤다. 최순실 게이트는 고영태 일당이 기획한 '국가반란극'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저항본부를 발족시켜 이제부터는 국민저항권을 발동하겠다고도 했다.
어쨌든 나는 묻고 싶다. 이 게이트의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민주적 절차를 다하고 있는 것인가? 나 자신이 박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최순실이니 차은택이니 하는 자들의 권력 농단에 질겁하면서도 과연 우리는 적정절차(適正節次)를 거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짙은 회의감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광장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 언론조차도 광장의 민심에 숨죽였다. 대통령을 처단하자는 식의 막말에 대중은 환호했다. 재벌을 구속시켜야만 정의가 확립된다는 광장의 외침에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 재벌이 구속된 뒤엔 6.56㎡ 독방이 그가 살던 저택의 150분의 1이라는 얘기부터 구치소 밥 한 끼가 1천414원이라는 카타르시스용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그리고 과연 정의로운가?
이 사태가 끝나고 나서 어쩌면 광장이 원하는 대로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그 새 정부는 정의의 사도(使徒)일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늘 다수 쪽으로 움직이는, 가변적(可變的)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단언한다. 이 혁명적 사태 뒤에 닥칠 허망함을 감당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는 이 나라의 법규를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불의를 공격한다면 무슨 수단을 써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다수의 편에 섰을 때 어떤 비열한 짓을 해도 용서받는 사회를 만날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감춰진 우리의 이면(裏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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