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보
ㅊ섬유를 그만두니 다시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1997년 8월 말경이었다.
국민연금공단 대구 남구 달성지사에서 사업장(ㅊ섬유)과의 사용 관계가 종결되었다는 통지서가 왔다. 다음 날 달성지사로 찾아가서 실업자인데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임의 취득 형식으로 매달 보험료를 납부하면 된다는 게 아닌가. 지역 가입자처럼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월보험료도 69,000원이라며 매월 연금 납부 고지서를 가정으로 우송하니 은행에 납부하면 된다고 했다. 직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우선 국민연금으로부터 복원시켜 놓는 게 시급했다. 임의 취득 형식으로 납부하면 월 보험료를 전부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면에서 손실이 컸다. 중요한 건 연금보험료를 연체시키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국민연금을 복원시켜 놓은 난 다시 직장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했다.
10월 초. 벼룩시장 구인란을 통해 일곱 번째 직장을 구했다. 달성공단에 있는 ㅂ우유였다. 알고 보니 회사가 ㅂ우유가 아닌 도급업체 소속으로 용역직이었다. 즉 ㅂ우유가 인건비를 줄이려고 다른 업체 직원들을 도급으로 회사에 취업시키는 방법이었다. ㅂ우유 정식사원은 상여금 600%에 급여도 100만원 이상이었다. ㅂ우유는 막대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동시에 대량의 실업자들을 구제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보는 셈이었다. ㅂ우유 사원이 아닌 나로서는 근무는 비록 ㅂ우유에서 했으나 아무런 법적 혜택이 없는 한낱 일용직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월급이 85만원이기에 감지덕지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국민연금을 임의 취득 형식으로 복원시켜 놓은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운이 나빴는지 우리 가정에 우환이 연이어 찾아왔다. 9월 초 막내아들이 등교하면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오른쪽 손목 관절과 오른쪽 무릎 연골 파열로 6주 진단을 받고 한 달 넘게 입원했다가 통원 치료를 받았다. 사고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해 있었던 터라 치료비와 장애 보상금을 보험 회사가 처리해 주었다.
IMF가 시작된 초기라 그 무섭고 매서운 한파가 우리 가정을 예외 없이 덮쳤다. 개인 기업체에 근무하던 딸이 먼저 잘렸고, 큰아들이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이렇게 되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가장인 나도 회사에서 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
건강보험으로 수술받을 각오를 하고 있던 난 아무래도 회사에 찾아가 산재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회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했다면 치료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건강보험으로 수술을 받아야 해 환자인 나도 상당한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으므로.
다시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자식들도 놀고 있었기에 집안에 수입이 뚝 끊긴 상태였다.
어느 날 공공근로에 참여할 자들을 모집 중이니 동사무소에 와서 신청하라는 안내문이 왔다. 사무 보조직에 신청했더니 사무 보조직에 선정되었다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공공근로가 끝나자 난 다시 직장을 구하려 다녔다. 국민연금을 납부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아이롱 숙련공 모집 광고를 보고 아내와 함께 찾아갔다. 사장, 직원 등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다음 날부터 아이롱사로 근무했는데 그 회사가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지역가입자였던 내가 사업장을 취득함으로써 보험료를 반액만 납부하게 되었으니 분명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2003년 7월 20일 국민연금관리공단 대구 달성지사로부터 연금 수급자가 되었다는 노령연금 지급 결정통지서를 받았다. 첫 연금 금액이 104,020원이었다. 너무 적은 금액에 난 일순 망연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무엇에 속아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국민연금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결국 생돈 많이 불입하고 적게 받는 게 국민연금이었다. 언젠가는 연금 기금이 고갈되고 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항변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러나 그런 나의 신뢰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내와 함께 달성공단으로 찾아가서 문의했다. 뭐니 뭐니 해도 직접 찾아가 문의하는 게 가장 빨랐다.
연금이 입금된 통장을 내놓고 물었다.
"처음 연금을 시작할 때 월 소득액의 70%를 연금으로 지급한다고 하셨는데, 왜 연금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아! 그건…."
하면서 연금공단 직원은 천천히 말했다.
"지금 취업 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취업 중이라…." 난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ㄱ봉제에서 근무하고 계시죠." "네." "만약 실업자로 계시다면 연금은 분명히 이번에 지급받은 금액의 배액인 208,040원이 지급됐을 겁니다." 그제야 납득이 갔다.
"취업 중인 분들은 매달 급료를 받고 있으므로 연금 지급이 적더라도 생계에 타격이 가지 않지요. 그러나 실업자로 있는 분들은 지급받으신 연금의 배액을 받아도 생계가 어렵습니다."
난 크게 끄덕였다. 완전히 이해가 갔던 것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해마다 물가상승에 따라 연금이 인상되고 또 연금 수급권자가 사망하면 그 유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됩니다. 국민연금은 그만큼 든든하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제야 납득이 갔다.
난 정신을 차리고 봉투에서 꺼낸 안내문을 펼쳐 보았다. 올해 연금 인상액이 288,630원에서 297,000원으로 인상되어 있었다. 어느새 연금은 300,000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2003년 첫 연금을 지급받은 지 만 7년이 되고 있었다. 7년 사이에 연금이 10만원 정도 불어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03년 8월 29일부터 연금을 지급받은 데서 시작하여 4월까지 21,449,790원을 수령했다는 점이다.
'과연 내가 이만큼 연금을 지급받았단 말인가?'
자문해 보았다.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지급받은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단에서 허위 내용을 보냈단 말인가? 그럴 리 없었다. 연금공단에서는 사실을 기재해 보낸 것이다. 난 갑자기 숙연해졌다. 큰 감동이 가슴속으로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난 다시 가입 내역을 살펴보았다.
가입기간이 139개월에 5,951,700원을 납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금을 공제하고 15,498,000원을 더 수령한 게 아닌가. 난 전신이 꼿꼿해졌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커다란 감동의 물결이 쏴 하는 음향과 함께 가슴속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난 누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두 손을 방바닥에 대고 허리를 굽히며 공손한 음성으로 말했다.
"국연(국민연금)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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