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사이에 큰아이가 있다. 3년 전 앳된 얼굴로 중학교에 입학했고, 거침없이 2학년이 되었고, 무게감 있게 3학년을 보냈다. 그간 말수가 줄고, 목소리가 낮아졌으며, 교복 바지가 서너 번 바뀌었고, 무엇보다 제 소유의 면도기가 생겼다. 보이지 않게 성장을 거듭하며, 스스로 제 할 일을 찾고, 미래를 준비할 나이가 된 듯하다.
오늘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아이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식순에 따라 송사와 답사, 교장선생님의 회고사와 시상이 엄격하게 거행되던 무대가 환해진다. 이내 금빛 옷을 화려하게 입고, 호피무늬 목도리를 부티 나게 두른 한 학생이 무대 위로 나와 춤을 춘다. 관중의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온다. 흥이 오르자 "친구들아, 도와줄 거지!"라는 금빛스타의 말과 함께, 교복을 입은 서너 명의 학생들이 합류한다. 금빛스타를 중간에 두고 무대는 한껏 물이 오른다. "구OO! 잘한다!! 파이팅!!"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한다. 얌전하고, 숫기가 없어 방 안에서 늘 혼자 시간을 보내던 아이였다. 무대 위의 저 능수능란한 금빛스타가 바로 큰아이라니. 자신들을 이만큼 보듬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그리고 후배들에게 두려워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외치는 졸업생들의 메시지가 건강하다. 친구들과 화합하여 수많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제 끼를 발산하는 저 자신감을 나는 여태까지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마냥 어린 줄만 알았고, 부모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내 걱정이 모두 쓸데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교복을 발기발기 찢고 '졸업빵'이 당연한 관행처럼 번지던 졸업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지금 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꾸민 졸업식이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지를 보라. 마냥 어른들의 걱정 속에서 터지고 깨지기만 하는 사고뭉치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미숙하지만 최선을 다해 삶의 한 단계를 건강하게 넘어온 아이들이 대견하다. 낯선 조직생활 속에 나를 찾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극복하며 '우리'를 형성하려 애썼던 시간 동안, 아이의 생각과 마음은 더 깊고 견고해졌으리라.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제 끼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걱정하고 초조해하던 어른스럽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지혜를 찾고, 혜안을 찾아, 스스로 젊음을 즐기는 저 어린 청춘들에서 사제, 친구, 선후배의 인간관계에 깃든 푸른 향기가 난다. 전통으로 남아도 좋겠다. 참으로 아름다운 축제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자장면 한 그릇씩 나누었다 한다. 앞으로 다양한 삶들을 살아가겠지만, 오늘의 이 건강한 축제, 이 유쾌한 졸업식의 회상 속에 모두는 늘 '하나'로 뭉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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