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대인 숙면 방해하는 '빛공해'

침실 옆 가로등 "아…잠을 잘 수가 없어"

#생체리듬 흔들어 면역력 약화

#눈 피로·유방암·전립선암 유발

#우울증 등 정신 질환 원인으로

최근 아파트 1층으로 이사 간 김모(42) 씨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창문 앞에 설치된 보안등 불빛이 침실을 훤히 밝히는 탓이었다. 김 씨는 일반커튼 대신 암막커튼을 구해 달고 난 후에야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다. 김 씨는 "자다가 깨는 일이 계속되니 낮에도 늘 피곤했고 소화 장애까지 생겼다"고 푸념했다.

어둠을 밝히는 조명은 현대인들의 삶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인공조명은 현대인들의 생활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범죄와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환해진 밤은 건강을 위협한다. 이웃집 불빛과 가로등, 옥외광고 등의 '빛공해'는 생물학적 리듬을 흔들어 불면증과 두통, 우울증 등을 유발하고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

◆대구, 전국 두 번째로 빛공해 심해

빛공해는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인공조명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외부의 빛이 생활공간까지 들어오는 '침입광'이나 강렬한 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는 '눈부심', 과도하게 많은 조명이 사용되는 '빛 혼란', 도시의 밤하늘이 훤하게 밝아지는 '스카이글로'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빛공해가 심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국제 공동연구팀이 전 세계 빛공해 실태를 분석한 연구 결과, 한국은 국토 면적 중 빛공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89.4%로 주요 20개국(G20) 중 이탈리아(90.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대구는 전국적으로 빛공해가 심한 축에 속한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2~2013년 전국 6개 도시 79개 지점에서 가로등 조명의 광침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광침입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는 조사 지점 8곳 가운데 3곳이 '빛 방사 허용기준'인 10럭스(lx'촛불 1개에서 1m 떨어진 지점의 밝기)를 웃돌았다. 10lx는 생체리듬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 수면 장애와 면역력 저하 등을 유발하는 수준이다.

◆침실은 최대한 어둡게, 자기 전에 스마트폰 피해야

빛공해에 따른 건강 이상은 멜라토닌 호르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멜라토닌은 밤처럼 어두운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과도한 빛에 노출되면 합성이 중단된다. 빛공해로 생체리듬이 흔들리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면역 기능이 약화된다.

국내 연구진은 빛공해가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고, 눈 피로도를 높이며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유병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내 연구진이 젊은 성인 남성 23명을 대상으로 빛이 전혀 없는 방과 빛공해(5~10lx)가 있는 방에서 수면다원검사를 진행한 결과, 밝은 방은 어두운 방에 비해 수면시간이 줄고, 잠든 후에도 자주 깨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빛공해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다음날 낮 동안의 인지 기능도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빛은 눈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빛공해에 노출되면 결막 충혈과 안구 건조, 눈 피로감, 눈 통증 등이 나타난다. 이 밖에도 비만이나 수면 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빛공해를 피하려면 생활습관부터 바꾸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휴식을 취할 때는 백색 계열의 주광색 조명보다는 노란색을 띠는 전구색 계열의 조명이 적합하다. 침실은 최대한 어둡게 유지하고,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 등 불필요한 빛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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