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지금은 법(法)보다 치(治)

'법에 의한 심판'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 분쟁을 해결하거나, 죄지은 자를 처벌하고, 피해 본 사람을 구제하는 조치'일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법에 의한 처벌을 최종적인 것으로 확정함으로써 복수가 복수를 낳는 비극의 고리를 끊고 사건을 매듭짓자는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선량한 사람이 '악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자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법적 판결은 죄인을 처벌하는 행위인 동시에, 피해를 당한 이에게 '더 이상 복수할 수 없다'고 강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리면 국민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갈까? 불행하게도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법 판결'은 '사건의 종식'을 선언하는 것인데, 작금의 상황을 보자면 오히려 '새로운 사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 사회는 둘로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다. 한쪽은 '대통령 헌법 위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마땅히 탄핵 되어야 한다고 믿고, 다른 한쪽은 '대통령 무죄'와 함께 탄핵 소추 자체를 '국가 반란극'으로 규정한다. 대통령 탄핵 문제가 이미 '헌법 위반' 또는 '헌법 위반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가 돼 버렸다는 말이다.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가 된 이상 '촛불'과 '태극기'는 자신들이 바라는 결과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광장의 촛불'이 모든 것을 주도했을 때, 수사 결과가 아니라 '카더라 통신'으로 탄핵 소추안을 작성했을 때 이런 상황은 이미 예고됐다.

야권 대선후보들이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뿐이다' '(기각하면) 헌재도 탄핵해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도 이 사태가 이미 '인식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는 '광장의 태극기'도 마찬가지다. '특검의 망나니 칼춤' '좌익 세력 총출동' '대통령 효수한 무리들 탄핵' 등의 구호는 자신들이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결론 내렸음을 시사한다.

촛불과 태극기가 이처럼 험악한 것도 문제지만, 헌법재판소가 '광장'의 '트집 잡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다. '헌법'이 아니라 '경중'을 잣대로 판단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선고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요 쟁점이 됐던 5개 사안 중 3개(▷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선거법 유감 발언 ▷재신임투표 제안 행위)에 대해 '위헌' 혹은 '헌법 수호 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나머지 2개(▷측근 비리 ▷경제 파탄) 에 대해서는 '해당 없음'과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노무현의 행위는 수동적 소극적인 위반에 그치고 있어 탄핵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위헌을 인정하면서도 '소극적, 수동적 위반'으로 보아 탄핵을 기각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든 '자의적'이라는 공격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말이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들'은 '정권을 찬탈당했다'며 저항에 나설 것이다. 이어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촛불정권'이 들어서기라도 한다면 작은 일에도 거리로 뛰쳐나와 '하야'와 '탄핵'을 외칠 것이다. 반대로 탄핵 소추안이 기각되면 '촛불들'은 '더 이상 법에 부패 척결을 맡길 수 없다'며'횃불'을 들 것이다. 어느 쪽이든 광장은 분노와 불신으로 들끓을 것이 뻔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를 것이다.

두루뭉술한 마무리를 받아들이기에 한국인은 피가 너무 뜨겁지만, 흑백 판정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 '사태의 종결'이 아니라 '원한'과 '분노'의 시작이라면 차라리 덮는 편이 낫다. 여야는 지금 '탄핵열차'를 멈추고,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과 '대선 일정' 협의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 진영으로서는 '억울한 일', 야권으로서는 '정의가 훼손되는 일'이지만 파국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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