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선한 의지

1962년 출간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DDT의 전면 사용금지를 불러왔다. '토질을 오염시키고 벌레를 죽이고 벌레를 잡아먹는 새를 죽이고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죽일 것'이라는 레이철의 끔찍한 경고를 받아들여 1972년 미국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생산과 사용을 금지했다. 지구는 '체내(體內) 잔류 DDT'라는 공포에서 해방되는 듯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DDT는 값이 매우 싸다. 이는 DDT 생산 금지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비싼 살충제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가난한 국가의 주민에게는 재앙이라는 것이다. 현실은 이를 증명했다. 생산 금지 이후 가난한 국가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했다. 2010년 한 해에만 17개국에서 2억2천만 명이 말라리아에 걸렸고, 이 중 70만 명이 사망했으며 사망자의 80%가 콩고,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의 어린이였다.

그러나 실제 발병률은 이보다 더 높아 전 세계 인구의 10%가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도 있다. 이런 현실을 놓고 '쥐라기 공원'의 저자로 극단적 환경론자에 비판적인 마이클 크라이튼은 "DDT 사용 금지는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비판했다. '선한 의도의 나쁜 결과'의 전형적인 사례다. 의도가 좋으면 결과도 좋을 것이란 믿음은 엄청난 착각이다.

소련이란 국가의 작동 방식도 이를 잘 보여줬다. 레닌 등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의 가르침에 따라 혁명 후 시장을 없앴다. 국가의 '선한 의지'가 이를 대처할 터였다. 의도는 좋았다. 역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시장이 폐지되면 고용노동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다. 고용노동이 없어지면 남는 것은 강제노동뿐이다. 이를 거부하면 죽음이다. 소련의 방식이 "중앙집중화된 계획은 중앙집중화된 살해로 귀결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선한 의지를 갖고 좋은 정치를 하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됐다"고 말해 야권 지지층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너무 '우클릭'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며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선한 의지'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선한 의지에도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점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말꼬리 잡고 늘어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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