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근교 산의 재발견] 동구 단산지~만보산책로

감태봉 정상에 서면 2호수'1강…가슴이 시원하다

대구 동구 단산지-만보산책로 코스는 호수-강-산 경관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사진은 저녁 무렵 단산지 풍경.
대구 동구 단산지-만보산책로 코스는 호수-강-산 경관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사진은 저녁 무렵 단산지 풍경.
감태봉에서 내려다본 금호강 풍경.
감태봉에서 내려다본 금호강 풍경.
감태봉의 명물 구절송(九節松).
감태봉의 명물 구절송(九節松).

개인적으로 호수 조망 산행은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이 최고가 아닌가 한다. 산행 내내 시선을 훔쳐가던 산정호수의 물빛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십자수로(十字水路)가 선명했던 추월산의 담양호, 의암호를 굽어보며 오르던 춘천 삼악산도 빼놓을 수 없는 호수 뷰(View) 코스다.

대구에서도 호수를 끼고 오르는 산행지가 제법 있다. 수성못 경치가 일품인 법니산-용지봉 코스도 그중 하나고 월광수변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삼필봉 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경북에서는 영천호-기룡산, 운문호-옹강산 조합도 호수와 산을 아우를 수 있는 코스다.

이번에 소개할 코스는 대구 동구 봉무동 단산지와 만보산책로다. 도심과 가까워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팔공산 지류의 다양한 산길과 연결도 가능하다. 또 정상인 감태봉에 올라서면 금호강 수변 경관, 이시아폴리스, 앞산, 대구타워부터 팔공산 비로봉, 동봉, 서봉, 낙타봉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동구의 호수 명품 코스 봉무공원으로 떠나보자.

◆일제 식민 수탈 현장이었던 단산지=대구 시민들에게 사계절 호반 정취를 선물하는 단산지. 한자도 로맨틱한 '단산'(丹山)을 쓴다. 본래 단풍으로 명성을 얻었거나 작명 시점이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 아니었나 한다.

이런 목가적 이미지의 호수, 그러나 그 건축 목적은 실용(實用)이었다. 일제는 1930년대 산미증산계획을 벌이며 전국에 수리시설을 건축하기 시작하는데 지묘동의 공산댐, 단산지는 그때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미곡 증산 반출을 위한 일제 식민지 착취시설의 현장인 셈이다.

감태봉을 사이에 두고 두 호수가 나란히 있지만 공산댐과 단산지가 한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두 저수지는 150m 지하수로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1930년대 일제는 불로동, 봉무동 지역 주민 3천여 명을 강제 동원해 3년 동안 공사를 벌였다. 상류의 공산댐이 넘치면 물을 받아서 호수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수리시설이었다.

동구청은 단산지, 봉무동고분군, 팔공산 자락을 연계한 '용암산성 누리길'을 만들었다. 16.5㎞ 누리길엔 천연기념물 측백나무 숲과 불로고분군 등 주변 문화재를 연결해 역사, 문화자원을 탐방할 수 있도록 했다. 누리길 주변에는 옻골마을, 용암산성, 경주 최씨 집성촌 등 사적지가 많아 역사 체험 코스로 인기가 높다.

◆단산지-감태봉-구절송 코스 인기=봉무공원은 공원 초입부터 설렘을 안겨준다. 두 줄로 시원스럽게 도열해 있는 메타세쿼이아 산책길은 그 자체로 테마 코스가 된다.

오늘 목적지 단산지 만보산책로는 호수-감태봉-구절송-호수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다. 출발지는 두 곳. 나비생태공원서 조금 진행해 바로 만나는 데크 계단과 왼쪽의 둑길 코스가 있다. 요즘 강동마을 터널 공사로 길이 혼란스러워 왼쪽(호수 서편)에서 출발하는 것이 전체 코스를 진행하기에 수월하다.

호수 왼편에서 만보산책로 표지판을 보고 길을 접어들면 바로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강동마을이다. 지금은 터널 공사로 길이 다소 혼란스럽다. 산불감시초소 근처 지하도를 건너면 바로 감태봉으로 오르는 숲길과 만난다.

등산로 초입에서 큰 묘지를 만나면 왼쪽 길을 잡아서 오르면 된다. 길은 송림으로 이어지고 느린 걸음으로도 한 시간이면 정상에 이른다.

감태봉은 동구 산군들의 교통로. 정상에서 여러 갈래로 산길을 열어 놓는다. 서쪽으로는 팔공보성타운이 있는 지묘동, 북쪽으로는 문암산을 거쳐 구암마을로 내려가는 코스와 연결된다.

감태봉의 명물은 '구절송'(九節松)이다. 한자대로 밑동에서 '아홉 개의 가지를 펼친 소나무'다. 산을 타다 보면 이런 나무들을 가끔 접하는데 참나무 같은 활엽수에서도 같은 현상이 목격된다. 아마도 발아(發芽) 시점에 가뭄, 냉해 같은 자연재해가 닥쳐서 생존 위협을 느낀 어린나무가 여러 가지를 뻗쳐서 활생(活生)을 도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인간) 식으로 말하면 이 나무는 아홉 개의 생명보험을 들어 놓은 셈이다.

감태봉에서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 경관이 잇다. 첫째는 산의 '밑그림' 역할을 하는 단산지, 둘째는 금호강이다. 화담산-가람봉을 굽이쳐 돌아가는 금호강의 유려한 S라인은 포토제닉으로 손색이 없다. 감태봉이 숨겨 놓은 경관이 하나 또 있는데 바로 공산댐 쪽 풍경이다. 정상에서는 이 풍경이 희미하고 북쪽으로 50m쯤 더 내려가면 잡목 사이로 댐 중류의 풍경과 접할 수 있다. 한 곳에서 호수 두 곳을 조망하는 코스는 드문 경우가 아닌가 한다.

◆3.8㎞ 호수 일주하면 산행 마무리=감태봉에서 '2호(二湖) 1강(江)'의 경치를 맘껏 즐겼다면 이제 길은 하산길로 이어진다. 내리막길은 조용한 소나무숲길로 이어진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사색을 하며,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좋다.

아직도 체력이 남아 있는 준족들이라면 '도동 가는 삼거리'에서 측백나무숲 쪽으로 진행해도 좋다. 측백나무숲까지는 1.5㎞로,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짐승' 수준의 산꾼들은 여기서 산길을 연장해 용암산성-대암봉-요녕봉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감태봉에서 만난 윤영천(58'대구시 지산동) 씨는 "단산지-감태봉 코스는 중장년층이 부담 없이 오르기에 좋은 곳"이라며 "호수와 산과 생태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고 말한다.

강동마을에는 지금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곳곳에 땅이 파지고 중장비가 길을 막아 혼란스럽다. 등산로를 잘 찾아들도록 한다.

터널 공사 현장의 위험한 철계단을 거쳐 산 하나를 넘으면 다시 단산지로 떨어진다. 7㎞ 남짓 산행길에 피곤할 수 있지만 호수에서 나비생태공원-주차장으로 빠지지 말고 오른쪽으로 돌아 호수를 일주할 것을 추천한다. 마니아들은 만보산책로만 걸으면 '70점 산행'이고 호수까지 일주해야 '100점짜리 코스'라고 말한다.

호숫가에서 만난 신숙희(52'대구시 봉무동) 씨는 "호수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 지루하지 않고 걷다가 힘들면 아무 데나 걸터앉아 수다를 떨 수 있어 좋다"며 "요즘 호수 근처에 맛집, 찻집이 많이 생겨 차 한잔 나누는 여유까지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아침저녁으로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남녘에서는 꽃눈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고 한다. 봄맞이 산행으로 호수, 산, 강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단산지를 올라보면 어떨까. 호수 물빛에 안구도 정화하고, 마음속의 티끌까지 씻어낸다면 최고의 힐링 코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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