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7시 대구염색산업단지(이하 염색산단) 인근 서구 비산7동 주민센터 앞 골목. 고무가 타는 듯한 매캐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골목길을 지나던 한 여성은 외투 소매로 코를 감싸 안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가게 앞 벤치에서는 노인 서너 명이 무심한 듯 장기를 두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30년 넘게 이곳에 살다 보니 악취에도 적응한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곳 주민들은 1980년 염색산단이 조성된 이래 지속적으로 악취에 시달려 왔다. 비산7동의 서쪽에는 염색공장들이, 동쪽으로는 주택가가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북서풍이 부는 가을과 겨울철에는 염색산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해공기가 고스란히 주택가로 날아들어 주민들은 더욱 힘들어한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면서 염색산단이 배출하는 유해공기로 고통받아 온 주민들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국립환경과학원이 염색산단과 서대구산업단지, 대구 3공단을 대상으로 한 2014년 연구에 따르면 산단과 인접한 지역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 발생률이 매우 높았다. 만성 기관지염 발병률은 대구시 평균보다 남성은 27%, 여성은 13% 높게 나타났고 급성 기관지염은 남성이 7%, 여성이 20%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염색산단의 경우 톨루엔, 클로로폼 등 유해 화학물질 연간 배출량이 타 공단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2010년에 배출된 톨루엔은 염색산단이 약 408t을 배출, 3공단(75t)보다 무려 5배 넘는 양을 배출했다. 클로로폼의 경우 염색산단이 약 75t을 배출한 반면 타 공단은 10t 이하였다. 해당 유해물질은 인체에 일정 시간 이상 노출될 경우 호흡기 자극, 현기증, 심장 및 신장 손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화학물질이다.
악취를 견디다 못해 동네를 떠나겠다는 주민도 있다. 4년 전부터 비산7동에서 살고 있는 A(51) 씨는 조만간 달서구로 이사할 계획이다. A씨는 "밤늦게까지 공장이 가동되는 탓에 자다가 악취 때문에 깬 적도 많다. 가족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염색단지를 옮기는 것만이 해결책인데 지금껏 뚜렷한 변화가 없어 차라리 내가 떠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구청이 지난해 12월 실시간 악취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민들의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주민 최모(56) 씨는 "과거보다 악취가 개선됐지만 건강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그 이상으로 커졌다"며 "염색산단을 통째로 이전할 수 없다면 최소한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대구지방환경청과 합동단속을 펴 대기배출업소 34곳에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며 "법정 기준치보다 대기오염 수치가 낮더라도 주민들이 체감하는 악취는 심하다. 지속적으로 악취 저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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