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유선이 만난 사람]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

"지역 인재, 지역 취업 되도록 헌법 고쳐야 나라 돌아가"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정치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그들은 권력의 흥망성쇠를 몸으로 겪으며 살아간다. 그들의 언행은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때로는 여론의 환호를, 때로는 지탄을 받는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지만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그 때문에 말초적인 인기에 부응하는 시류 영합형 정치인이 등장한다. 소셜미디어와 언론은 그들의 얄팍한 놀이터가 된다. 반면 소신과 철학을 우직하게 밀고 가는 정치인은 꽃길과 가시밭길을 넘나든다. 그러나 정치의 진정한 평가는 역사 속에서 내려진다.

한때 명실상부한 정권의 2인자였다가 지금은 군소 원외정당의 대표가 되어 있는 이재오 전 특임장관을 만나서 헌법과 권력에 관한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최근 시국이 어수선하다. 사람들은 정치가 잘못돼서 이렇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까.

▶사실이다. 정치가 잘 됐으면 나라가 이런 꼴이 안 났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양약 또는 한약을 처방한다. 양약은 복용한 즉시 질병을 털어내는 특징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한약 처방으로는 안 되고 양약 처방이 아주 필요한 상황이다. 양약 처방의 핵이 대통령이다. 만병의 근원이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임도 대통령이 온전히 져야 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사유화하면 안 된다. 국가 공권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만 되면 권력이 다 내 거다'라는 인식은 곤란하다.

-그래서 개헌을 얘기하셨나?

▶지금 개헌 얘기하는 사람들은 내가 2009년에 한 표현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정부에 들어와 보니까 이명박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제를 끝내지 않으면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한 뒤, 그 헌법 위에서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대통령제는 한계가 왔다. 이제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나라가 안 된다. 그러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지금은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상당한 것 같다.

▶지금은 뭐, 그렇게 목숨 걸고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내가 말한 것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하자고 한다. 얼마 전 안철수 대표도 6년 단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자고 했다. 6년 단임이냐 4년 중임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개헌하자는 사람들은 다 분권형 개헌을 하자고 한다. 내가 분권형 개헌하자고 할 때는 나를 완전히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니 지금은 전부 다 이상한 사람이 됐다.

-국민들도 권력을 사유화할 수 없는 방안을 원한다.

▶내가 말하는 개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헌법의 철학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가 나라를 찾았기 때문에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국가 중심이었다. 그러니까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나라의 정체성을 언급했다. 자연적으로 이하 헌법 조항도 국가 우선에 귀속되고, 국가를 유지하려면 자연적으로 권력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권력 중심의 헌법이 이뤄진 것이다. 반면, 독일도 우리와 같이 1945년에 해방됐지만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잃었다. 독일은 제2차 대전 후 인간의 고귀함과 인간중심주의 국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독일 헌법 제1조는 '모든 인간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독일 헌법은 전체가 인간중심의 헌법으로 이뤄져 있다.

-두 나라의 헌법은 시작부터가 다르다. 배경이 되는 철학에도 차이가 있다니 놀랍다. 권력 분산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 바란다.

▶우리는 국가 중심이고 그쪽은 인간 중심이다. 그렇게 70년이 지나고 보니 오늘의 독일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좋은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도 바꿔야 한다.

권력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인데 권력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국가의 비상대권, 예를 들면 전쟁에 관한 권한 등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가져야 한다. 또 외교권, 통일권, 국방에 관한 권한 등 국가 안보에 관한 중요한 부분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권한이 있어야 한다. 일부에선 그런 권한을 굳이 대통령이 가져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분단국임을 상기해야 한다. 남북통일도 해야 한다. 따라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할 때까지는 외교, 통일, 국방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 외 나머지 행정, 교육, 정치, 경제 등에 대한 권한은 전부 내각에 위임해야 한다.

-그렇게 개헌을 하게 되면 국민들이 실제 몸으로 느낄 만한 장점이 있는가.

▶대통령과 내각이 권한을 나누면 내각은 다시 지방정부와 권한을 나눠야 한다. 지방정부에 자립권을 줘야 한다. 지금은 말만 지방정부다. 선거만 할 뿐 재정의 80%를 중앙정부가 차지하고 지방정부는 20%에 불과하다. 지방정부에 재정, 교육, 치안, 입법 등 이런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 그러면 중앙정부가 그만큼 가벼워지니까 예산의 폭도 가벼워진다. 문제는 현재의 지방정부별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인구가 천만 명인데 세종시는 기껏 50만 명도 안 된다. 지방정부가 불균형해서는 안 되니까 행정구역을 개편해서 인구 100만 명 규모의 광역시를 전국에 50개를 만드는 것이다. 그 50개 광역시에 골고루 중앙정부가 쓰는 예산을 한 지방정부에 1조원씩만, 50조원만 내려줘도 일자리부터 시작해 중앙정부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 기관의 공직자는 각 지방의 비율에 의해 채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인구비례에 따라 지방정부의 공무원과 중앙정부 가운데 지방에 내려가는 부처의 직원은 해당 지역 사람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러면 굳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해당 지방에서 채용하면 지역의 학교와 교육제도가 제대로 운용된다. 우리 지역에서 대학 나오면 우리 지역에서 취업이 되도록 헌법을 고쳐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

이런 것들을 하자고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개헌 내용에 포함돼야 나라가 제대로 발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개헌이라고 하니까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 등 권력구조만 얘기한다.

-역대 정권의 2인자 가운데 유일하게 재판정이 서지 않았다. 비결이 무엇인가.

▶역대 정권의 2인자는 다 감옥에 갔다. 유일하게 안 간 사람이 나 하나다. 나는 '권력도구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농부가 밭을 갈려면 호미가 있어야 하듯, 정치인이 정치를 하려면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 자리는 국민을 위해서 도구로 쓰라는 자리이므로 개인을 위해 쓰면 안 된다. 나는 한 번도 권력을 나 개인을 위해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역대 2인자들은 모두들 돈 때문에 감옥에 갔다. 우리 집 가훈이 '가난하더라도 정의롭게 살아라'이다. 나는 재야에서 민주화운동 할 때부터 '먹고살면 된다'는 주장이다. 나는 가난과 정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정의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 정권에서 내가 장관을 할 때도 기업이나 재벌들이 아예 나에게 청탁할 생각을 안 했다.

-대표께서 국민권익위원장 재직 시절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기초를 닦으셨다. 그때 뒷얘기로는 MB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적극적이었다면 더 빨리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김영란법은 내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만든 행동강령을 법제화한 것이다. 그때 MB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김영란 위원장은 제 후임이었는데 여론에서 반대가 좀 있었지만 내가 특임장관을 하면서 힘을 보태겠다는 의중을 전하기도 했다. 그때 더 박차를 가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내가 제안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안에 대해 이재오가 국민권익위원회를 강화해서 국민권익위원회 밑에 공수처를 놓고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국회에서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됐다. 지금은 내가 낸 법안 그대로 하자고 여야가 요구하고 있다. 개헌도 그렇고 공수처도 그렇고 내가 하자고 한 그대로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표현에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지금은 우리가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을 보내고 이명박'박근혜정부로 넘어왔다. 박근혜 정권이 잘했으면 다시 보수정권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워낙 못한 데다 10년 보수정권이 이어지니 지겹게 느껴진다. 국민들 마음속에는 '아이고 누가 됐든, 저 비슷한 사람들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권불십년이라는 표현이 지금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늘푸른한국당 최병국 공동대표와는 악연으로 만나지 않았나. 지금 어떻게 이렇게 함께하는가.

▶기가 막힌 인연이다. 내가 5번 구속이 됐다. 마지막 감옥 갈 때 나를 잡아넣은 사람이 지금 공동대표인 최병국 전 서울지검 공안부장이다. 그때 서울지검 공안부 멤버가 쟁쟁했다. 최병국, 황교안, 박한철 등이 거기 있었다. 당시 김기춘 검찰총장은 나를 무조건 구속시키라고 지시했다. 하다하다 안 되어 결국 보안사범이 아니라 당시 내가 운영하던 민족학교와 관련하여 학원 설립에 관한 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그때 나를 구속하면서도 최병국 부장과 팀원들이 나한테 잘했다. 자리와 입장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이재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에서 경선을 할 때다. 나는 MB캠프의 책임자였다. 최병국 의원은 공안검사 출신이라 박근혜 캠프에서는 당연히 그쪽으로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최병국 의원에게 "형님, 나하고 같이 가야지 어디 가십니까?" 하니까 "그래 이재오하고 같이 가야지" 하면서 결국 나를 따라왔었다. 그래서 박근혜 캠프에 찍혀 18, 19대 국회 공천에서 낙천됐다. 완전 드라마다. 그 시대, 서로 처한 역할과 입장이 달랐다. 나는 민주화운동을 했고 최 선배는 공안검사를 했지만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공통된 정의감 같은 것에 끌렸다.

지난 토요일에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주례를 최병국 공동대표가 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많이 성숙해졌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매우 낮다. 어찌된 일일까?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다. 정의에 대한 박탈감, 분배에 대한 박탈감, 편견에 대한 박탈감, 그러니까 정의롭지 않으면 평등하거나, 평등하지 않으면 나라가 정의롭거나 해야 나중에라도 잘 살겠지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정의롭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그래서 행복할 것이 없다.

-애초에 이재오 대표께서는 가난한 노동운동가였다. 권력의 정점에 섰다가 지금은 원외정당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세 단계로 본다. 이 세 단계 중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

▶내가 제일 행복했던 적은 민주화운동을 하고 감옥갈 때였다. 그때는 목표가 분명했다. 독재를 무너뜨려야 했다. 딱 그 하나였다. 민주화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민주화되고 나니 복잡해지더라. 나도 복잡해지더라. 그러니까 한나라당에 들어갔다가 국회의원 한 20년을 해도 세상은 똑같고, 똑같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사물을 봤을 때 저것이 정의에 합당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리당략과 다르더라도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