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형문화재, 10만 시간의 지혜] (4)청송 옹기장 이무남 옹

"명품 옹기? 참고 기다려야만 나와"

체험 온 아이들이 만든 작은 옹기들이 그의 흙집을 감싸고 있다. 흙집의 중심엔
체험 온 아이들이 만든 작은 옹기들이 그의 흙집을 감싸고 있다. 흙집의 중심엔 '당신의 말이 오라(옳아)'라는 말이 박혀 있다. 불필요한 다툼에 대한 경계다.

10년 전 위암 2기·이혼 위기

옹기 작업 몰입하면서 극복

일주일간 1500℃ 열 견디듯

인내 가져야 좋은 옹기 완성

새집이 싫어 손수 만든 흙집 구들장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다. 청바지 차림으로 고무털신에 발을 욱여넣는 그는 영락없는 촌로였다. '무형문화재'라는 훈장은 머리를 쓸어넘기는 손에 조각돼 있었다. 반백년 옹기를 빚고 구웠던 손은 잿빛이었다. 팔자를 일러준다는 손금은 손바닥 구석구석에서 진했다. 미래가 아닌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나이로 78세의 이무남 옹은 20년 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다. '옹기장이'다. 그는 옹기장이라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부심이었다. 다만 여느 장인들의 겸손처럼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에게 옹기는 '생활'이었다. 매일 세 끼를 챙겨 먹고, 용변을 보고, 잠을 자고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걸 계속 해왔기에 꾸준할 수 있었다. 오래 일하라는 뜻으로 무형문화재에 지정된 것으로 안다.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위기도 있었다. 10년 전에 위암 2기였다. 계속 하던 걸 하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이제 그만둬야지' 하면서 계속 했다. 흙을 만질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생각이 정리된다. 옹기에 몰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사람이랑도 많이 다퉜는데 옹기만 만지면 잊는다. 심지어 이혼을 막아준 게 옹기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걸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더 신나고 좋다고 했다. 더 기분이 좋을 때는 "그 댁 옹기로 된장 빚어 맛이 좋다"고 할 때다.

그의 옹기가 특별 취급을 받는 이유는 '인내'에 있다. 천천히 달구어지는 가마 안에서 일주일 넘게 1천500℃ 가까운 열을 견뎌야 완성된다. 장을 품을 수 있는 옹기는 개중에도 소수다. 또 장맛을 깊고 진하게 해주는 미세한 숨구멍을 위해 사과나무, 뽕나무 등으로 만든 유약을 바른다. 참고 기다려야 명품이 나온다는 거다. 평생 옹기와 함께한 삶 속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기도 했다.

"'몰입의 즐거움'이라고 해둬도 되겠네요. 빨려 들어갈 정도로 정성을 다하면 거기에 맞는 결과가 나와요. '빨리빨리' '나부터 먼저'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일을 그르쳐요. 독 속에 든 장도 햇빛과 바람을 맞아야 익는 거랑 같은 이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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