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참 외통수인 것 같다. 지금의 형국이 딱 그렇다. 조만간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큰 결정을 앞두고, 과반쯤의 사람들은 곧 실현되리라 기대되는 정의 구현에 격앙되어 잔뜩 예민해 있으며,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불의의 장본인을 찾아 분노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과반에는 못 미쳐 보이나 여전히 적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도 이건 공정한 정의가 아니라며 다른 방향으로 분노를 내뿜고 있으며 그 이후를 두고 보자며 거리를 휘젓고 있다. 이래저래 올봄은 이쪽저쪽 누구에게나 정의롭지 못한 시대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분노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는 다를지언정, 말을 이쪽으로 움직이면 다수의 국민들이, 저쪽으로 움직이면 나머지 국민들이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여, 곧 다가올 봄에는 '춘래불사춘' '잔인한 달' 등의 수사가 난무할 것이며, 그 힘들었던 IMF 시대에는 필사적인 생존 본능이라도 엿보였던 데 비해, 2017년 봄에는 오로지 분노만이 가득한 사회 분위기가 될 것 같은 불길하나 유력한 예감이 든다.
무능한 통치자로부터 비롯된 혼란이 거의 모든 국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의외의 감정 통합을 가져오고 있으니, 무능함 속에 빛나는 한줄기 비상한 능력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이 상황이 안타까우면서도 우스운 블랙코미디로 비친다.
경쾌한 멜로디와 후렴구의 휘파람이 익숙한 노래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는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친숙한 음악이다. 이 음악은 영국의 한 코미디 그룹의 노래로, 그들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삶의 밝은 면을 보세요'라는 제목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사형을 언도받아 죽어가며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이니, 역설적인 낙관성이 이 음악의 기본 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밝은 멜로디 덕인지 이 노래는 많은 가수에 의해 꾸준히 불리고 있으며 광고 음악에도 많이 사용되어 왔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폐회식에서 공연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영국의 국민 응원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가 나오는 퍼포먼스는 큰 실수 후에 씨익 웃으면서 다시 일어나는 장면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의 미사일에 피격되어 침몰해 가는 영국의 구축함 쉐필드호에서 젊은 수병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이 노래를 합창했다고 하는데, 그때가 가장 노래의 의미가 돋보이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침몰해 가는 배, 맹렬한 불길, 전투에서의 패배감과 굴욕감, 무엇 하나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리 높여 부르는 낙관의 합창이 비극적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만들어 준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을, 뒤지고 있으나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는 9회 말 한일전의 국가대표 야구경기쯤으로 여기며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듯싶다. 마지막 기회. 더 이상은 없는 승부. 그 절박함! 단 모두가 자신의 입장을 한국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또한 블랙코미디적 요소이다.
어떤 정치인들에게는 9회 말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5회쯤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는 10년 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려 지내며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열정, 올바른 한 표의 가치를 폄훼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그 가치와는 별도로 내 생활의 낙관성을 지키며 소소한 밝은 면을 보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목련의 꽃망울은 톡 치면 바로 꽃을 피울 듯이 팽팽해져 봄바람 한 번이면 팝콘처럼 터질 듯하다. 봄이 오는지 단골 마트의 토마토값이 100g당 200원이나 내려서 잠시 웃었다. 겨울의 칙칙하고 두꺼운 무채색은 봄이 오면 따뜻하고 경쾌한 색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분노의 시절을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낙관성을 지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야 우리의 생활이 블랙일지언정 희극으로 유지될 수 있다. 누가 비극을 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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