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동맥류로 쓰러진 하미자 씨

"아이가 돼 버린 아내를 어찌 돌볼꼬…"

서장수(가명) 씨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내 하미자(가명) 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서장수(가명) 씨가 병실에 누워 있는 아내 하미자(가명) 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몸도 성찮은 내가 아픈 니를 우찌 돌볼꼬…." 오른팔이 불편한 남편 서장수(가명'74) 씨가 병상에서 잠든 아내 하미자(가명'68) 씨를 왼팔로 그러안고 눈물을 쏟았다. 아내는 남편의 오열도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남편의 눈물이 아내의 볼 위로 뚝뚝 떨어졌다. "대답 좀 해봐라. 나는 이제 우짜면 좋노." 남편은 대답 없는 아내를 몇 번이고 불렀다.

두 달여 전,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는 아이가 됐다. 아내는 간병인에게 "우리 집에 데려다 달라"며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칭얼거린다. 하루 중 아내가 웃을 때는 병문안 온 남편이 두어 시간 아내 곁에 머물 때뿐이다. 남편은 아이가 되어버린 아내에게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미자야, 애들 어렸을 때 기억나나? 그때는 많이 힘들었는데도 좋았다 그자?" 서 씨가 성한 왼손으로 아내의 볼을 쓰다듬었다. 남편을 바라보며 "나, 집에 데려가"라는 아내에게 남편은 해줄 말이 없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남편만 알아보는 아이 돼

지난달 7일 길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한 남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10년 전 발병했던 뇌동맥류가 재발해 아내를 무너뜨린 것이었다. 응급수술에는 성공했지만 1주일 뒤 뇌에 물이 찼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의사 선생도 가망이 없다고 하는 걸 내가 울며불며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렸어."

두 번째 수술이 무사히 끝난 덕에 아내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나 아내는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됐고, 남편 외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한동안 중환자실 신세를 진 아내는 얼마 전 상태가 나빠져 멸균실로 옮겼다. 남편은 한숨이 늘었다. 아내가 쓰러진 후 수시로 끼니처럼 거른 탓에 체중도 8㎏이 줄었다. "미자가 걱정돼서 어디 밥을 먹을 수가 있나. 요새는 밤에 잠도 안 와."

노쇠한 남편은 앞으로 아내를 어떻게 돌볼지 막막하다. 왼팔만 남아 있는 몸으로는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의 기저귀조차 갈아줄 수 없는 처지다. 기초생활보장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해온 노부부는 1천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낼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서러운 게 많지. 미자한테 곰탕 한 번 끓여주는 게 내 소원이오."

◆남편은 젊어서 오른팔 잃어…두 자녀와 연락도 끊겨

월남전에 참전한 서 씨가 7년여간 군대에 있는 동안 아내는 어렵게 자녀를 건사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자녀들은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고, 사춘기 시절부터 부모와 멀어졌다. 두 자녀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진 지 벌써 8년을 헤아린다. "우리가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한 탓이지 자식을 우예 원망하겠노."

서 씨는 20대에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오른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 보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지만 다른 공장에서도 보름 만에 해고당했다. "팔도 성치 않은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며 자르더구먼. 그때부터는 손에서 일을 놨어."

오랜 기간 부부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남편은 아내의 집안일을 도왔고, 적적하면 함께 산책을 하고 화투 놀이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둘이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며 서로 기대며 지냈어. 그런데 할마이가 이래 돼서 내가 죽고 싶은 심정이다."

남편은 몇 년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려 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은 아내의 다리를 붙들고 울었다. "아내가 '자식들도 우리를 버리고,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었다'고 하더라고. 겨우 달래서 같이 잘 살아보려 했는데 저렇게 누워 있잖아." 남편은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 한 번 사주지 못한 게 한이다. "지지리도 가난해서 만날 아내랑 돈 한 푼 두고 다투고 그랬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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