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았던 옛 경성감옥이, 지나간 시간을 응축한 채 모습을 드러낸다. 높게 쌓아올린 붉은 벽돌 사이, 작은 문을 들어서면 외부와 단절된 냉기가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비명과 신음이 뒤섞인 죽음의 철문. 길게 뻗은 수용소 복도를 걷는다. 양옆으로 늘어선 감방의 문을 열면 온몸이 섬뜩하고 아프다. 내부는 비워졌으되 아직도 대한 독립만세의 함성이 살아남아 날것으로 와글거린다. 12 옥사 내부에 설치된 독방은 먹물처럼 깜깜하다 하여 '먹방'이라 불렸다. 거대감옥은 햇살과 바람, 하늘과 땅 한 점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심리적 극한에서 겪는 공황상태는 정신착란으로 이어졌다. 고문실에 들어서자, 날카롭고 습한 고통이 폐부를 짓누른다. 고문의 증거물들이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짐작게 한다. 탄압과 억압의 문들을 벗어나, 눈부시도록 푸른 잔디밭을 밟다 보면 북서쪽 끝자락, 통곡의 삼거리에 서게 된다. 숨이 탁 막힌다. 직진하면 면회고, 왼쪽은 격벽장, 오른쪽은 사형장이다. 사형장 입구 안과 밖에 미루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독립투사들의 생목숨 끊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두 그루의 미루나무를 현 사람들은 '통곡의 미루나무'라 부른다. 용수를 뒤집어쓰고 처형장으로 가는 사형수들이 나라를 빼앗긴 원통함과, 끝내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죄책감에 미루나무에 기대어 통곡했던 탓일까. 같은 날 심은 두 그루 나무임에도 사형장 안쪽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하고 말라간다. 독립군들이 마지막 숨을 토하고 죽어나간 교수대 의자는 너무도 비루하다. 교수줄이 목에 걸리고, 발밑이 쑥 꺼지면, 올가미가 잔인하게 숨통을 죄었을 게다. 마루판 아래 뻥 뚫린 차디찬 지하 공간에서 시신을 검안하고, 시신마저도 은폐하고자 늦은 밤 몰래 반출했다. 시구문 앞에 서니 휑하고 서늘하다.
아무도, 누구에게도 강요하거나, 강요받지 않았던 독립운동은 물결치듯 번지고 번져, 기미년 3월 1일 정오, 한반도 구석구석에서 대한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일제히 터져 나왔으리라. 그날의 뜨거운 함성이 환청과 환시로 남아 서대문형무소 구석구석을 맴돈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했던 날들은 고스란히 증거로 남았다. 육신은 비록 가두었으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정신마저 억압할 수 없었으리라. 신체가 부러지고 찢기는 고문의 공포 앞에서도 당당하게 옥중 투쟁을 했던 유관순 열사, 2년 4개월이나 옥고를 치르고도 독립운동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병희 지사의 말씀에 한없이 숙연해진다. 벽을 가득 채운 수형기록표와 독립투사들의 사진 앞에서 오늘 내가 누리는 자유를 감사한다. 삼일절 아침, 서대문형무소에 높게 걸린 태극기가 힘차게 외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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