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생태계의 복잡한 성쇠는 중심축의 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축이 옮겨간 곳이 흔히 일컫는 시내, 번화가, 도심, 즉 도시의 1번지 골목이 되는 것이다. 현재 대구의 중심축은 동성로에 있다. 하지만 자의(도시계획)로든 타의로든 이 축은 언젠가 움직일 것이다. 동성로 다음은 어디일까.
◆서울'대구 1번지 골목 평행이론
과거 서울과 대구의 1번지 골목은 닮은꼴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에는 남촌(명동)과 북촌(종로)이 있었다.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에는 일본인 거리 명동('본정'이라고도 불렸다)이, 북쪽에는 조선인 가게 위주 종로가 위치했다.
그때도 1번지 골목의 필수 요소는 큰 상권, 많은 유동인구, 그리고 랜드마크였다. 명동'종로에는 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이 있었다. 바로 옆 광화문에는 조선총독부가 있었고, 남쪽으로 가면 경성역(현 서울역)이 있었다. 백화점은 서양의 신문화를 소개하는 무대였다. 은행은 경제, 공공기관은 정치와 행정, 기차역은 물류의 중심지라서 골목으로 사람을 끊임없이 모으는 역할을 했다.
비슷한 시기 대구의 1번지 골목은 북성로'향촌동이었다. 랜드마크로 미나카이백화점, 조선은행 및 조선식산은행의 대구지점, 경북도청이 있었고, 북쪽에 대구역이 붙어 있었다. 이 일대로 대구의 상권과 유동인구가 집중된 이유다.
◆여러분의 대구 시내, 동성로
한양도성과 대구읍성이라는 비슷한 공간에서 움튼 서울과 대구의 도심은, 8'15광복과 6'25전쟁 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겪으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서울의 중심축은 여러 개로 분화했다. 명동'종로, 영등포'여의도, 강남 등 일명 3대 도심이 형성됐고, 도심을 보완하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부도심도 여럿 나타났다. 도시가 과밀 수준으로 팽창하자 중심축이 하나로는 부족해 여러 곳으로 나뉜 것이다.
반면 대구 도심은 여전히 하나다. 1980년대 전후로 북성로'향촌동에서 동성로로 이동한 후 그대로다. 대구시가 도시계획에서 중부(동성로)와 동대구 등 2개 도심을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 사람들 인식 속 '대구 시내'는 동성로 한 곳이다. 이와 함께 대구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밀집지를 중심으로 몇 개의 부도심이 생겨났을 뿐이다.
대구의 중심축은 여러 개로 갈라지는 대신 40년 가까이 동성로의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동성로는 면적만 보면 전국 최대 규모 골목이고, 유동인구도 주말이면 일일 100만 명을 훌쩍 넘어 서울의 웬만한 번화가보다 많다. 그래서 동성로 영향권 내에는 대구역, 중앙로역, 반월당역. 경대병원역 등 도시철도역이 4개나 있고, 특히 반월당역은 전국 도시철도역 중 가장 많은 23개 출구를 갖고 있을 정도다.
◆도시 중심축 이동, 기회일까 위기일까
대구와 달리 다른 대도시는 중심축을 이동시켜 도시 전체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광주의 중심축은 10여 년 전부터 금남로'충장로에서 상무지구로 이동했다. 금남로'충장로에 있던 광주시청이 2004년 상무지구로 옮겨갔고, 전남도청이 2005년 전남 무안(남악신도시)으로 떠났다. 이어 공공기관, 큰 기업의 광주 본사가 줄줄이 상무지구로 이전했다. 결국 구도심이 된 금남로'충장로는 새로 들어선 아시아문화전당을 기반으로 열리는 각종 축제 특수에 웃다가도, 광주 내 다른 번화가에 비해 높은 공실률을 보이는 등 예견된 상권 약화에 울기도 하는 모습을 복합적으로 보이고 있다.
인천도 용현동을 비롯한 구도심 상권이 구월동, 송도신도시 등으로 옮겨가고 있고, 대전도 대전역 주변과 은행동의 유동인구가 신도심인 둔산동, 도안신도시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구도심 대 신도심' 구도의 사회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은 학교 신설이 필요한 신도심에 학생 수가 감소한 구도심 소재 학교를 옮기는 정책이 '학교 쟁탈전'이라는 이름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구도심 주민들은 교육 격차와 지역 쇠퇴를 우려하고 있다. 대전은 구도심 유동인구가 줄자 병원들이 손님을 찾아 신도심으로 이탈하고 있다. 신규 병원까지 신도심으로 몰려 구도심의 의료 서비스 질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구 新 1번지 골목 후보는?
대구시 도시계획상 '투 톱' 도심인 동성로와 동대구(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일대)는 앞으로 상권을 기반으로 대구의 1번지 골목이냐 2번지 골목이냐를 놓고 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통계에서는 동성로 현대백화점'롯데백화점'대구백화점'동아백화점과 동대구 신세계대구의 대결이 진행형이다. 백화점 대결만 있는 게 아니다. 골목 상권도 중요하다. 다만 동성로가 탄탄한 골목 상권을 갖고 있는 반면, 동대구는 신세계대구가 주변 상권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아직 기대감만 있다.
유동인구를 만드는 '만남의 장소' 패러다임이 앞으로 유지될지 바뀔지도 중요하다. 동성로는 현재 여러 세대가 공유하는 대구 대표 만남의 장소다. 그래서 동성로는 대구의 유일무이한 집회 거점이기도 하다. 최근 남녀노소가 운집한 촛불집회, 태극기집회가 지표다. 두 집회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 구 한일극장 앞, 반월당네거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동아쇼핑 앞 등 모두 동성로 일대에서 열렸다. 세계적인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공공광장은 너무 크면 황폐해 보인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보행로의 교차점을 따라 소규모 공공광장이 곳곳에 배치되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동성로 곳곳이 이 말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유럽만 봐도 광장이 있는 곳이 그 도시의 1번지 골목이다.
만일 광역화, 글로벌화한 만남의 장소가 각광을 받게 된다면 동대구가 유리하다. 버스(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기차(동대구역), 항공(권영진 대구시장은 이전할 통합 대구공항과 동대구역을 공항철도로 연결하는 것은 물론 동대구역에서 공항 수속을 밟을 수 있는 공항터미널을 설치하는 방안도 최근 언급했다) 인프라를 묶어 사람을 모으는 교통 거점이 될 수 있어서다.
도로인 동대구로도 유망하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가 모티브가 된다. 크게 보면 번화가는 서울 명동처럼 골목이 둥근 형태와 테헤란로처럼 긴 길을 중심으로 주변 골목이 연결되는 형태로 나뉜다. 테헤란로는 4㎞ 거리에 무역'금융'상업 등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다. 동대구로도 동대구역에서 두산오거리까지 5㎞ 거리에 금융'법조'주거 등 관련 시설이 늘어서 있다. 사실 동대구로 중심 범어네거리는 꾸준히 차세대 대구 1번지 골목 후보로 주목받아온 곳이다.
또 최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며 인구가 대거 유입되고 있는 달성군 테크노폴리스, 동구 신서혁신도시도 후보다. 같은 이유로 대구시가 K2 이전터에 건설키로 한 동촌신도시 역시 장래에 후보군에 들 수 있다.
동성로가 계속 대구 대표 골목으로 남을 수도 있다. 저성장 시대에 맨땅에 새 도심을 만들 사회적 여력이 약해지고 있어서다. '도시축소의 시대' 저자 야하기 히로시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출생률이 낮아지고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며 세계 수많은 도시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 도시들은 '지혜롭게 작아지는 창조적 축소'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군살을 빼고 건강해진 도시가 미래에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며 기존 도심을 잘 고쳐 쓸 것을 강조한다.
오래된 도심은 도시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높다는 주장도 있다. 건축가인 장디페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저서 '도시를 생각하다'에서 "도시는 역사의 흔적을 축적하면서 변화의 가능성도 찾는다. 따라서 도시의 발전은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구의 결합으로 가능하다. 그러면서 도시는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인간 중심 공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도시의 지속가능성이 나온다"고 했다.
두 교수의 주장이 생경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대구를 비롯해 요즘 많은 도시가 오래된 골목에 숨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을 도시계획에 비중 있게 집어넣어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 성공한 지역이 그 도시의 1번지 골목이 될 수 있다는 힌트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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