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휴전되고 2년이 지난 1955년 3월 나는 남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는 전쟁의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학교에는 과원아라고 부르는 전쟁고아가 득실거렸고, 길에는 상이군경이 넘쳤다. 방학이면 폭발물에 대한 안전 교육을 두 시간씩이나 받은 후 집에 갈 수 있었다. 게다가 그해는 흉년이 들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원조품인 옥수숫가루, 우유 가루로 만든 떡을 먹고 긴 해를 넘기곤 했다. 참으로 꿈도, 미래도 없는 암울한 시대였다.

나는 이 시절 영원히 잊지 못할 두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저녁을 먹고 어둠이 깔리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서문시장 큰 골목에 삼삼오오 초'중등 청소년들이 모이는 것이다. 그러면 아주 멋진 청년인 대장이 나와서 우리를 군사훈련 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식훈련이었는데, 모두 준비해간 나무로 어깨총을 한 채 3개 부대로 나눠 질서정연하게 행군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군가도 부르면서 씩씩하게, 기합을 받아도 아무 불평 없이 잘 견디며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았다. 이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눈만 감으면 나타나는 영상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그 당시 우리 집에 방이 네 개 있었는데, 세 개는 모두 이북에서 온 피란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중년여자 한 분은, 심한 불안 증세와 함께 팔을 계속 떠는 병이 있었다. 이분은 간혹 우리 방에 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북에서는 교회목사인 남편, 청년이던 두 아들과 단란하게 살았다. 해방 후 김일성 정권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전 가족이 타살되었는데, 자기는 기적적으로 깨어나 남쪽으로 넘어왔다는 거였다. 그때 몽둥이에 맞아 함몰된 이마 위 머리 쪽을 이야기 도중 가리키곤 하셨는데, 이마에 깊숙이 골을 지워 논 검붉은 자국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전율에 떨었다. 그 골이 팬 검은 자국도 지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영상의 되었다.

지금은 혼란의 시대다. 그간 알게 모르게 발전되어 온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준을 반영한 새로운 정치가 나타나야 함에도,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지 못한 현 정부로 말미암아 탄핵정국이 되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좌익과 우익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이며 서로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라서 하는 집회이지만 여기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국기를 문란케 하는 범법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폐기된 사상이다.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중공이 사실상 와해되고 자유경쟁을 도입하여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만 보아도 알 만하지 않은가. 또 과거청산 적폐청산이라고 하지만, 과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서 그 상태로 저장되고 보존된다. 그러므로 과거는 과거대로 인정해야 하는 당위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누구라도 종교와 정치, 도덕 앞에 서면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제일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그 사고가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것이다. 사람은 구조적으로 더러움과 깨끗함이 섞여 있는 존재다. 그러니까 용서와 화해, 사랑이 필요하고 그것이 최고 도덕률로 자리하는 것이다. 과거청산 적폐청산은 올바른 지도자가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헌재나 특검을 위협하거나 불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지도자들이 해야 할 행동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 이룩한 위대한 조국을 바로 세우고 지키기 위하여 더욱 이익집단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와 범법행위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더 이상 이런 집단들이 발호하지 않도록 그들 선동정치인들의 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두 가지 유년의 기억 때문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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