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희구의 시로 읽는 경상도 사투리] 맨자지

상희구(1942~ )

아부지 생일밥은 맨자지

형 생일밥은 반자지

내 생일밥은 반반자지

여동생 생일밥은 반에, 반에, 반자지

엄마 생일밥은 꼽삶이 꽁보리밥

(시집 『대구』 오성문화 2015)

*맨자지: 백 퍼센트 하얀 쌀로만 지은 흰 쌀밥. 본래말은 맨잦이일 듯. 밥을 '잦힌다'라는 말이 있는데 보리 같은 곡식은 단단하고 거칠기 때문에 먼저 보리를 한 번 삶은 다음, 밥을 안치지만 쌀은 거칠지 않고 연하기 때문에 맨으로 한 번만 잦힌다고 하여 맨자지라고 한다.

*반자지: 절반은 쌀, 절반은 보리쌀로 지은 밥. 그 시절, 생일날이면 아버지와 형만 나보다 더 하얀 쌀밥을 준다고 하여 필자가 빗대어서 만들어낸 말이다.

*꼽삶이 꽁보리밥: 쌀이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순전한 보리밥. '꼽삶이'란 보리쌀을 두 번(곱으로) 삶는다고 하여 생겨난 말이다. 식량 사정이 아주 힘들었던 시절의 우리네 어머니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얀 맨자지 쌀밥만 먹는 것을 죄악시했다.

옛날 한 가족 간에도 가장(家長)과 아들과, 딸 등, 신분의 차이에 따라 쌀밥, 보리밥 담는 구분이 확연했다. 가부장(家父長) 우선과 남존여비의 봉건사상이 남아있던 시절이었고 여기에서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끝없는 헌신이 도드라져 보인다. 참 세월이 좋아졌다. 지금 시절이야 보리밥이야말로 완전히 웰빙 식품이 되었지만 옛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에는 엄마가 밥을 풀 때 쯤이면 부뚜막에 걸터앉아 쌀밥 달라고 갖은 투정을 부리곤 하던 것이 어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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