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④김주영 작가-청송 외씨버선길

비봉산 남쪽 자락 600m 소나무 길, 느리게 걸을수록 삶의 여유 생겨

외씨버선길의 한 토막인 김주영 작가의
외씨버선길의 한 토막인 김주영 작가의 '그곳'은 소나무가 양옆에 늘어선 길이다. 김주영 작가의 대표 길인 양 길 초입에 '객주'이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김주영 작가의 '객주'에 천착한 탓이었으리라. 비가 그친 뒤 더 진한 달빛이 주흘산 자락 어딘가에 쏟아지는 그림을 그린 것은. 그의 마음속 안식처가 문경새재 어디쯤이지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은.

안동에서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에서 진보 땅에 들어서니 저 멀리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 외지인들이 '설마 저게 주왕산인가'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는 비봉산(해발 671m)이다. 작가의 '그곳'은 비봉산 남쪽 자락, 그의 작품 제목을 따 이름 붙인 문학관 맞은편에 있었다. 소나무가 한가득인 이곳은 '외씨버선길'의 일부였다.

"사방이 소나무다. 이곳을 산책하면 피로가 풀리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소나무 기운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가 숨 막혀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머리로는 차곡차곡 알맞은 단어들을 쌓고 끄집어내던 이곳은 '외씨버선길'의 셋째 길 중에서도 토막이었다. 객주문학관에서 왕복 2차로의 국도를 건너 오누이저수지를 옆에 두고 10여 분 오르막을 타니 너분등삼거리가 나온다. 그가 말한 길은 넓다는 뜻의 이 지역 사투리, 너분등삼거리에서 메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600m 거리의 평탄한 길이었다.

이곳에선 느리게, 더 느리게, 느려 터질수록 좋다고 했다. 그럴 만했다. 걸음이 느려지면 숨이 차분해진다. 여유가 생긴다. 땅을, 나무를, 앉은 새를 쳐다보게 된다. 맑은 들숨이 이토록 고마운 것일 줄이야. 종국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사는 삶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그래서 신신당부했다. 소나무 숲 사잇길에서 되도록 천천히 느껴보라고. 주민들이 간간이 오르내리며 인사를 건넨다. 인사가 고맙다. 천천히 걷는 길 덕분인가 싶다. 생사를 걸고 보부상들이 다녔던 그 길을 지금은 주민들이 살기 위해 걷고 오른다.

작가가 '내 마음의 안식처'라 자신 있게 권하던 곳에 들어오니 객주문학관은 물론 진보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작 자신은 무릎이 좋지 않아 이제는 자주 가볼 수도 없는 곳이 됐다.

솔잎 색이 더 짙어지면 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객주문학관에 딸린 창작관에 머무는 입주작가들이다. 김이정, 해이수 작가 등이 창작관을 거쳤다. 밤새 글씨름에 숨 막혀하던 문인들은 소나무 기운에 숨통을 틔웠고, 글발을 쟁여 창작관으로 돌아갔다. 창작관에서 쓴 작품 일부는 굵직한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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