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로건

늙어버린 울버린… 새 소녀 슈퍼히어로의 등장

17년 엑스맨 시리즈 고별작

비장한 서부극 스타일 접목

운명·삶의 가치 온전히 표현

가까운 미래, 능력을 잃어가는 로건(휴 잭맨)은 멕시코 국경 근처의 한 은신처에서 병든 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를 돌보며 살아간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고자 했던 로건은 정체불명의 집단에 쫓기는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지키고자 모든 것을 건 대결을 펼친다.

'로건'은 '더 울버린'(2013)의 후속작으로 엑스맨 최고의 인기 캐릭터인 울버린의 최후를 담았다. 코믹스를 영화화한 슈퍼히어로 무비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눈초리를 받는 돌연변이이자 세상 모든 슬픔을 가진 인생을 사는 남자 울버린의 마지막 영화이며, 17년간 울버린을 연기한 휴 잭맨이 엑스맨 시리즈를 떠나는 작별의 시간을 그린다.

'로건'은 엑스맨 시리즈 관련 열 번째 영화이고, 울버린 세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영화이다. 마크 밀러의 코믹북 '울버린: 올드 맨 로건'을 바탕으로, '더 울버린'을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울버린이라 불리던 그가 왜 로건이 되었나 하면 사정이 복잡하다. 울버린의 아버지 이름이 로건이었으나,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고, 우연히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다. 울버린은 태생 자체가 악랄한 악당의 운명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조리 죽는 운명의 장난 때문에 끝없는 고통 속에 사는 슬픈 슈퍼히어로이다.

때는 2040년대 중반, 뮤턴트와 히어로가 모두 최후를 맞이한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히어로인 늙은 울버린의 활약을 그린 이번 작품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담는다. 슈퍼히어로의 슬픈 생의 마지막 관문을 쓸쓸하게 관찰하는 진지한 영화로, 제임스 맨골드는 서부극 스타일을 슈퍼히어로 무비에 도입하였다.

이 영화 중간 삽입되는 서부극 고전 '셰인'(1953)과 제임스 맨골드가 직접 참조했다고 언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정서가 변주되어 담겨 있다. 그리하여 화려하고 현란한 액션보다는 처절하고 잔인한 액션이, 빠르고 유쾌한 리듬감보다는 쓸쓸하고 관조적인 무드가 영화를 가득 메운다.

슈퍼히어로가 서부극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액션영화로 현대 클래식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탄탄한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라는 레터르가 이 슈퍼히어로 영화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킨다. 늙어버린 울버린의 모습, 그리고 울버린과 휴 잭맨을 대체할 새로운 소녀 슈퍼히어로의 등장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팬들의 크나큰 관심사였다.

스스로 자가 치유되는 초능력을 가진 자였지만 점차 힐링 팩터를 잃어버린 상처입고 주름진 울버린의 육체, 순수하고 맑은 어린아이라는 선입견을 산산이 깨뜨리는 강렬하고 강인한 슈퍼히어로 소녀, 그리고 치매기가 살짝 비치는 순수한 미소의 노인이 된 프로페서 X, 아름답고 악랄한 빌런까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하모니가 여느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압도한다.

영화는 슈퍼히어로 무비 특유의 CG와 현란한 스펙터클, 그리고 잘 디자인된 액션신들의 향연과 달리, 고전 서부극의 톤처럼 쓸쓸하고 애처로우며 비장하다. 꼬장꼬장한 자존심과 노쇠한 육체의 울버린의 얼굴에 깊이 아로새겨진 외로움과 고통의 흔적들, 그 어디에도 유머가 끼어들 새 없는 진지하고 척박한 환경은 수정주의 서부극의 정서를 잘 되살리고 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상처 입은 맹수 같은 소녀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액션신은 강렬하다. 소녀 울버린인 '로라' 역을 맡은 12세 스페인 소녀 다프네 킨의 데뷔는 영화사상 가장 강렬한 아역 배우의 등장이라 할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와도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로건이 소녀를 받아들이며 둘 사이에 부녀 같은 교감이 피어나는 순간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제임스 맨골드는 앤젤리나 졸리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긴 작품 '처음 만나는 자유'(1999), 무명의 휴 잭맨과 처음 인연을 맺은 '케이트 & 레오폴드'(2003),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역작 '아이덴티티'(2003), 리즈 위더스푼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며 골든글러브 작품상에 빛나는 '앙코르'(2005), 부성애를 담은 서부극 '3:10 투 유마'(2007), 톰 크루즈 주연의 코믹 액션 '나잇 & 데이'(2010)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후 '더 울버린'(2013)으로 슈퍼히어로 무비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아마도 '로건'은 그의 최고 작품이자 대표작이 될 것이며, 그간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어온 자신의 과거를 말끔하게 씻어줄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멸종한 절망의 시대를 육체노동자로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로건이 프로페서 X와 생활하면서 로라를 만나 유사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인간적인 고뇌와 운명, 삶의 가치가 삭막한 사막을 배경으로 온전하게 표현되는 질적으로 뛰어난 슈퍼히어로 무비를 보고 나니, 소녀 슈퍼히어로로 세대교체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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