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군소 후보, 거품 후보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선거에 나설 바보는 없겠지만 꼭 그렇지만 않은 듯하다. 선거 벽보판을 장식하는 수많은 군소 후보들을 봐도 그렇다. 카이젤 수염으로 유명한 진복기 씨는 제6대 대통령 선거(1971년)에 나서면서 "족보에 이름 올리려고"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입후보자를 영미권에서는 'Minor Candidate'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호우마츠고우호(泡沫候補)'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치자면 '거품 후보'쯤 되겠다. 포말처럼 금세 사라질 후보라는 의미다.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는 다수의 호우마츠고우호가 난립하기로 유명하다. 1991년에 16명이 출마한 것을 비롯해 1999년 19명, 2007년 14명, 2014년 16명이 입후보했고 2016년에는 무려 21명이 나섰다. 그러나 이는 1960년 치러진 토치기현의 한 촌장 선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행정구역 분리를 둘러싸고 촌장파와 대립파가 대거 나서면서 202명이 출마하는 전대미문의 촌극이 벌어졌다.

군소후보라고 볕 들 날 없으라는 법 없다. 처음에 군소 후보 취급을 받다가 선거 활동을 통해 크게 주목받아 유력 후보가 되거나 당선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 사례도 있는데,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0.5% 득표율에 그치는 일생일대 수모를 겪었다.

우리나라 역대 대선 중에서는 입후보자가 가장 많았던 선거는 제17대 대선(2007년 12월)으로 모두 10명이 출마했다. 이때 단연 화제를 모은 군소 후보는 허경영 씨였다. 이미 제15대 대선(1997년)에 나선 전력이 있는 그는 기상천외하기로 더 업그레이드된 공약과 돌출 행동으로 '허본좌'라고 불리며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끌었다.

올해 치러질 제19대 대선은 이대로라면 가장 많은 후보가 나서는 선거가 될 공산이 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 볼 때 자칭타칭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30~40명에 이른다. 물론 이 중에는 허본좌도 있다. 그는 국회의원 300명을 정신교육대에 집어넣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정치의 희화화'경박화라는 비판이 있지만 짜증만 유발시키는 정치판을 보면서 한순간 웃음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군소 후보들의 돌출 행동들이 그리 미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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