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신입생 자녀를 둔 학부모입니다. 이제 출발선에 선 아이에게 학생이 지녀야 할 배움의 자세를 일러주십시오.
▶송영필 멘토=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이제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라는 것은 우호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거절의 메시지이다. 대화에서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말은 '이제 알았어'가 아니라 '뭔지 모르겠어'이다. '무지의 확인'이 바로 대화의 지속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모르겠어'라는 메시지가 상대방과의 만남을 지속시킨다.
배움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배움과 관련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앎의 문이 열린다. 그런 점에서 배우는 자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가 아닌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배움은 "나는 ~을 할 수 없다" "나는 ~에 관해서 모른다"와 같은 무지(無知)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우는 자가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이다.
이를 국어 공부에 적용시켜 보자. 수능의 경우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됨에 따라 수능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어 영역이 일정 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이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2017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의 만점자는 0.23%에 불과하다. 2011학년도 수능(국어 만점자 0.06%) 이후 최근 몇 년간 시행됐던 시험 중 가장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출 문제를 풀고 있거나, 길게 쓰인 해설지를 읽는 공부를 한다고 해서 국어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배우는 자가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읽기 능력이 부족한지, 개념의 이해가 부족한지, 문제 해결을 위한 이해력이 부족한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를 많이 풀거나 정리 잘된 해설서를 많이 읽는다고 국어 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해야 할 것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학생들에게 새 학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디더라도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며, 그것의 출발은 '무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이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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