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 지상 갤러리] 석재 서병오전-(1)석란도

뭉툭한 바위 위 그윽한 난초…봄볕에 아첨 않고 절로 향기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선생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조망하는 '대구미술을 열다-석재 서병오'전이 2월 21일부터 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석재는 시(詩)'서(書)'화(畵) 3절을 하나의 예술원리로 융합시킨 예술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일신문은 석재 서병오전이 열리는 기간 동안(5월 14일까지) 매주(월요일) 한 작품씩 지상(紙上) 갤러리를 마련한다.

석재 서병오는 비쭉 솟아 오른 뭉툭한 바위를 먼저 그리고, 그 위쪽으로 두 포기 난을 쳤다. 왼쪽으로는 난을 칭송하는 시를 적어 넣은 다음 사인을 하고 이름과 호 '석재'(石齋)를 새긴 도장 두 방을 찍었다. 화제는 명나라 관료이자 문인인 설망(薛網)의 시이다.

"그윽한 난초 수많은 꽃과 다르니 낯빛을 봄볕에 아첨하지 않음을 사랑하네. 가을바람 찬 이슬이 깊은 숲에 내리니 보는 사람 없어도 절로 향기를 풍기네. 석재가 아울러 써넣다"(我愛幽蘭異衆芳 不將顔色媚春陽 西風玉露深林下 任是無人也自香 石齋 倂題)

따뜻한 봄에 피는 많은 꽃들과 달리 서늘한 가을, 깊은 숲속 홀로 피는 향기로운 난초꽃. 옛 사람들은 난꽃의 그윽한 유향(幽香)을 매화의 은은한 암향(暗香), 모란의 진귀한 이향(異香)보다 더 고귀하게 여겨 향기의 할아버지(香祖)라고 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난초꽃의 향기, 그런 인격(君子)을 열망하는 다짐과 그리움이 묵란을 그리는 뜻이다.

난초에 바위를 함께 그린 석란화는 석파(石坡) 이하응의 '석파란' 이후 유행했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석재가 석파를 만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무렵이다. 석재는 과거를 준비하며 서울에 일시 머물렀는데, 그때 유력 인사의 사랑에 드나들며 견문을 넓히는 한편 명문가 또래들과 교유했다. 그의 총명함이 석파에게 알려져 석재는 운현궁을 출입하며 필묵 예술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10대에 할아버지뻘인 석파의 총애를 받으며 석파란을 배우고 서울의 문인, 묵객들을 견문한 경험은 석재가 평생 서화를 가까이하게 된 시작이 되었다.

'석란도'는 이하응, 운미(芸楣) 민영익, 포화(蒲華'상하이 화단의 원로)의 난법을 모두 흡수해 석재가 이룬 '석재란'이다.

석재는 이하응의 영향을 받은 석란(石蘭)과 현애란(懸崖蘭), 민영익풍의 노근란(露根蘭), 난초와 지초를 함께 그린 지란(芝蘭), 화분에 담긴 분란(盆蘭), 골짜기에 무리 지어 자라는 곡란(谷蘭) 등 다양한 도상의 묵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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