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계수리, 섬세한 여성이 두각 나타낼 수 있죠"

대구 첫 여성 시계수리점 낸 정문선 씨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배울 수 있는 기술로 헤어 미용, 네일아트, 메이크업 정도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찾아보면 여성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는 참 많아요. 시계수리가 그중 하나입니다."

대구 시계수리 업계 최초로 여성 시계수리공이 등장했다. 지난달 말 대구도시철도 2호선 성서산업단지역 '우리몰'에 시계수리점을 연 정문선(35'사진) 씨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여성 시계수리공은 전국에서도 드물고, 정 씨처럼 30대에 창업까지 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정 씨는 '대한민국 시계수리 신지식인 1호'(2001년)로 널리 알려진 시계수리공 장태호(56) 씨의 제자다. 40여 년 경력의 장 씨는 그간 80명이 넘는 제자를 길러냈는데, 여제자는 정 씨가 처음이다. 장 씨는 "시계 최강국인 스위스만 보더라도 여성 시계 기술자가 남성보다 많다"며 "섬세함은 세계 여성의 공통된 강점"이라고 말했다.

많게는 200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시계를 다뤄야 하고, 수많은 시계 브랜드의 특성을 꿰고 있어야 하는 시계수리 기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정 씨에게 장 씨는 취업이 아니라 곧장 창업할 것을 권했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가게 임차와 시계수리 공구 말고는 별다른 창업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 씨는 "시계수리 업계는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됐지만 기계식 시계, 특히 '명품'으로 불리는 고급 시계는 꾸준히 팔린다. 그만큼 시계수리에 대한 수요가 있어 창업이 유망한 분야"라고 했다.

두 사람이 사제의 연을 맺은 데에는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개인적 공통점도 한몫했다. 경주에서 태어난 정 씨는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중학교 때 가출했다. 부산과 대구 등지를 떠돌면서 당장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이런저런 일을 하며 10대, 20대를 보냈다. 포항 출신인 장 씨는 선천성 소아마비를 이유로 어릴 적에 버려져 대구 복현동의 한 고아원에서 자랐다. 장애를 한탄하던 중 운명처럼 시계수리를 배우게 됐고, 1985년 전국기능올림픽 시계수리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정 씨는 "장애를 극복한 선생님으로부터 도움을 얻어 제 삶을 극복한 것은 물론 창업으로 평생의 일을 갖게 됐다"며 "앞으로 장애인, 여성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계수리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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