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받는 주미 러시아 대사 키슬략
접촉했던 미국측 인사 잇따라 사퇴
만남 숨긴 참모, 트럼프 위기로 몰아
사태 따라 국제정치 향방 바뀔 수도
007 시리즈나 '킹스맨' 같은 첩보영화를 보면 스파이는 잘생긴 외모에 멋진 정장을 빼입고 전광석화 같은 솜씨로 적을 제거하는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금발 미녀와의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난데, 알고 보니 그녀가 적국의 스파이라는 설정은 첩보영화의 중요한 공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이미지와 연결하기 힘든 노년의 외교관이 미국에서 암약해온 러시아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다.
선거 당시부터 참모들의 찔러 행보와 러시아의 대선 해킹 개입설로 트럼프가 곤욕을 겪는 가운데, 스파이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현재 의심의 대상은 주미 러시아 대사인 세르게이 키슬략이다. 그는 '가장 위험한 러시아 남자'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트럼프 진영의 여러 인사들이 그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줄줄이 사임하거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키슬략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정권 출범 후 한 달도 되기 전에 물러나야 했다. 러시아 대선 해킹 개입 조사 책임을 맡았던 법무장관 제프 세션스 역시 과거 키슬략과 두 차례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사에서 손을 뗀 것은 물론 사임 압력도 받고 있다. 외교관과 통화하거나 만난 것이 잘못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플린과 세션스가 러시아 대사와 접촉한 사실을 숨긴 데 있다. 게다가 트럼프의 사위도 키슬략과 만난 자리에 동석했고 트럼프의 장남까지 러시아 관련 행사에서 고액을 받고 연설한 사실이 밝혀져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가 트럼프를 총체적 위기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사실 젊은 시절 푸틴이 소련 정보 당국의 비밀 요원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동독 등에서 이른바 스파이로 활약했던 과거를 푸틴은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의 유명한 콤프로마트 전술에 트럼프가 걸려들었다는 가설도 나오고 있다. 공작 정치에 일가견이 있는 푸틴 측에 트럼프가 단단히 약점을 잡혔으리라는 것이다. 2013년 러시아를 방문한 트럼프에게 덫을 놓아 음란 동영상을 촬영했고, 러시아 측이 그걸 빌미로 트럼프를 협박하고 있다는 설이다. 러시아로선 이런 의혹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동영상은 존재하지도 않고, 주재국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은 외교관의 고유 임무로, 키슬략이 트럼프 진영 사람들과 만나 양국 관계를 논한 것은 정당한 외교 행위라는 것이다. 트럼프 측 인사들이 러시아 대사와 접촉한 사실을 감춘 이유에 대해선 미국 내 위험할 정도로 만연한 반(反)러시아 정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사실 러시아에서 트럼프를 도와주려 할수록 오히려 트럼프가 더 위기에 처하는 형국이라 이 말도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새로운 스파이 시대의 도래를 의심할 정도로 왜 미국은 그토록 러시아를 경계하는 것일까?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의 적수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국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소련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 강한 러시아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크림반도를 병합했고 중동에서의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서방이 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했지만 국제 유가도 국제 정세도 점차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로 피해를 본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수출시장을 잃은 유럽 각국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재를 통해 러시아는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자생력을 길렀다는 분석이다.
클린턴과 부시 2세, 오바마와 트럼프 등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모두 겪어본 푸틴은 누구보다도 트럼프를 높게 평가한다. 어쩌면 정말로 세계사의 큰 축을 담당하려는 자신의 기획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조력자로 트럼프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러시아 게이트'가 어떻게 마무리될지가 트럼프 정권의 성패는 물론 국제 정치의 향방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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