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 방위산업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북유럽의 핀란드가 K-9 자주포 48문을 수입하는 1천915억원 규모의 계약을 우리 정부와 체결한 것이다. 이에 앞서 핀란드는 지난해 10월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를 2개월 앞둔 8월에는 방위협정 체결 예정 발표와 동시에 핀란드 남부지역에서 가상 적군의 공습에 맞대응하는 합동 공군 훈련도 실시했다.
모두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맞서기 위한 자위적 조치다. 그 직접적 계기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과 크림반도 강제 합병이다. 이는 핀란드에 대(對)러시아 외교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른바 '핀란드화'(Filandization)의 종언(終焉)이다. 핀란드화란 1944∼1991년 동서 냉전 기간 중 핀란드의 외교 안보 노선을 일컫는 국제정치학 용어로, 강대국 옆에 있는 약소국이 강국의 눈치를 보면서 점차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게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핀란드 국민은 이 용어를 싫어한다. 상당히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1953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칼 그루버가 대(對)소련 외교를 핀란드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한 이후 1960년대 서독 보수 정치인 프란츠 요제프 스트라우스 등이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소련의 눈치를 보는 핀란드에 빗대 비판하면서 일반화됐다고 한다.
핀란드화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핀란드는 100년간의 러시아 식민지를 거쳐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했으나 2차 대전 중 소련과 두 차례나 전쟁을 치렀다. 첫 번째 전쟁인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으나, 두 번 모두 패했다.
패전의 대가는 가혹했다. 비옥한 농경지와 주요 공업지역, 수력발전소의 4분의 1이 포함된 국토의 12%를 빼앗겼고,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 원조조약'을 체결, 외교 주권을 일부 포기하면서 친소(親蘇) 중립 노선을 지켜왔다. 소련 붕괴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의 K-9 자주포 수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비이성적 보복과 협박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 목표가 무엇인지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바로 '핀란드화'라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말이 좋아 '핀란드화'이지 시대착오적 중화 패권으로의 복속(服屬)이다. 사드를 배치해야 할 더욱 절실한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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