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2090년 3월 9일

2090년 3월 9일 목요일 오전 7시 30분. 대구경북경제청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가 열렸다.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이상고온, 태풍, 한파 등 연이은 자연재해로 식량생산이 60%포인트나 급감하면서 국제곡물시장이 요동친 때문이다. 수출경제국장인 삼철은 1주일 전 청장의 지시를 받고 브리핑 자료를 만드느라 몇 날 밤을 지새웠다. "반드시 대책을 마련하라"는 청장의 엄명이었지만 어디서부터 갈피를 잡아야 할지 막막했다.

2020년에 우리나라는 FTA는 물론 다자간 WTO 협약도 마무리 지었다. 완벽한 국제적 분업관계가 구축되면서 2040년경 한국에서 농산물 생산은 자취를 감추었다. 인구 1천만 명의 대경경제청은 외교, 안보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자치권을 가지고 공산품 중심의 경제구조를 확립하였다.

곡물 수입이 막히면서 시중 유통 물량과 경제청의 비상 보유 물량을 합쳐도 식량은 6개월이면 바닥날 수준이었다. 식량수출국들도 겨우 자급하는 수준이니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다. 올해에도 기상이변이 이어질 것으로 예보되자 지구촌에는 식량전쟁 우려까지 고조되고 있었다.

삼철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농산물 수출국은 올해 2월부터 식량 수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다른 경제청도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시민들을 스스로 농사짓게 하는 것입니다." 회의장은 크게 술렁거렸다.

삼철이 이렇게 보고한 것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서가에서 찾은 낡은 도시농업 책 한 권 때문이었다. 100년 전 구소련의 붕괴와 1992년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령까지 가세하자 쿠바의 식량은 삽시간에 바닥났다. 절망적 상황에서 쿠바인들은 스스로 농사를 짓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마당, 도로변, 옥상 등 빈 공간은 모두 농지로 활용하여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고, 1999년 쿠바의 식량자급률은 95%나 되었다.

회의장은 다시 술렁였지만, 처음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삼철은 도시농업으로 현재의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터를 텃밭으로 만들면 남은 종자를 파종할 수 있고, 옛 문헌의 농사기술을 시민들에게 전파하면 자기 가족이 먹을 양식은 최소한 자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쿠바가 도시농업으로 쌀 생산량의 65%, 채소의 46%, 오렌지를 뺀 과일류의 38%를 자급했다는 사실도 삼철은 빠뜨리지 않았다.

도시농업 액션플랜을 포함하여 삼철이 보고할 내용은 아직도 많았다. 청장이 박수를 치자, 간부들도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다. 삼철은 얼떨떨했지만 대경경제청이 전국 최초로 '대구경북경제청 식량위기 타개를 위한 도시농업 실천계획'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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