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 새評] 봉숭아학당 태극 학동들

서울대(미학과 학사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헌재 대통령 대리인 논리는 코미디

美 헌법 들고 와서 탄핵 부당성 주장

소추제도, 미국이 덜 엄격하게 적용

의원 2분의 1 찬성만으로도 의결

헌법재판소에서 보여준 대통령 대리인단의 웃지 못할 행태는 결국 '봉숭아학당'이라는 비아냥을 사고 말았다. 그 내부에서조차 입장이 통일되지 않아 법정에서 서로 삿대질을 하더니, 결국 대표 변호사의 입에서 "우리는 각자 대리한다"는 황당한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최후 변론일에는 서로 먼저 발언하겠다고 자기들끼리 다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왜 이런 코미디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까?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은 전적으로 김평우 변호사에게 있다. 그 전의 대리인단의 전략은 되도록 탄핵심판을 늦춰 7인 체제를 만든 후, 거기서 2인의 재판관을 확보해 '기각' 결정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평우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아예 탄핵심판의 정당성 자체를 문제 삼아 '각하' 결정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각'이냐 '각하'냐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 것이다.

헌재가 이번 사안을 '각하'해야 한다는 김평우 변호사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 함께 대통령 권한을 중지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6조 3항에는 분명히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탄핵소추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중지된다." 따라서 이 조항을 문제 삼는 것은 우리 헌법을 무시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김평우 변호사는 미국 헌법을 들고 와서 대한민국 헌법의 이 조항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헌법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는 유일한 방식은 '개헌'뿐이다. 아직 개헌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 헌재가 그저 김평우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선호한다는 이유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심판 절차를 미국 헌법에 따라 진행할 수는 없잖은가.

둘째, 탄핵의 사유로 열거된 13개 사안마다 국회에서 하나씩 별도로 투표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해괴한 주장이다. 헌법이나 국회법 조문을 아무리 뒤져 봐도 '탄핵 사유별로 따로 투표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도 국회는 '공직선거법 위반' '측근 비리에 대한 책임' '국정 파탄 책임'이라는 세 가지를 한데 묶어 일괄 투표한 바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헌재의 판단은 탄핵소추에서 투표의 방식은 '국회의 자율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어떤 절차가 헌법에 비추어 적법했는지 판단하는 최고의 심급은 대한민국에서는 헌법재판소다. 그런데 김평우 변호사가 대한민국 헌재가 적법했다고 판단한 절차를 '섞어찌개'라고 비판하며 들이대는 근거란 게 다시 한 번 '미국'의 관행이다. 대한민국 헌재가 미국의 제도를 준거로 삼아야 한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결국 김평우 변호사에게는 미국의 제도가 대한민국 헌법보다 상위법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그 잘난 미국의 제도를 제 편할 대로 써먹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국회에서 매 사안마다 따로 투표를 했다면 적어도 '세월호 참사 관련 직무 유기'는 결코 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잘난 미국에서는 의원 2분의 1의 찬성만으로 소추 의결이 이루어진다.

김평우 변호사는 비록 후진국 한국의 것이라도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규정한 제도는 기꺼이 존중한다. 만약 대한민국 국회에 그가 좋아하는 선진 미국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나머지 12개는 말할 것도 없고 세월호 관련 건도 의회 과반의 찬성으로 탄핵소추가 의결되었을 것이다. 새누리당 비박계를 제외하더라도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들만으로도 가볍게 의회 과반이 넘지 않는가.

국회의 소추는 '기소'에 해당하고, 헌재의 심판은 '재판'에 해당한다. 선진국 미국의 제도는 소추에 2분의 1, 인용에 3분의 2의 찬성을 요구한다. 반면, 후진국 한국의 제도는 소추에도 3분의 2, 인용에도 3분의 2의 찬성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후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이 탄핵심판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봉숭아학당의 태극 학동들이여, 코미디 좀 그만 하시라. 요즘 국민들, 웃을 기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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